아크 본부 아이기스의 상업 구역 가장 깊숙한 곳,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프라이빗 주얼리 부티크의 공기는 바깥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듯 고요했다. 층고가 높은 천장에서 쏟아지는 핀 조명들이 검은 벨벳 트레이 위에 놓인 금속과 보석들을 날카롭게 비추고 있었다. 실내를 채운 은은한 백차 디퓨저 향기 사이로, 홍예준의 몸에서 배어 나오는 드라이 멘솔과 젖은 베티버 향, 그리고 웬즈의 중성적인 홍차 향이 기분 좋게 뒤섞여 맴돌았다. 나란히 놓인 가죽 소파에 앉은 예준은 평소처럼 숄더 홀스터를 차는 대신,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린 깔끔한 흰색 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수십 개의 반지 샘플들을 마치 표적지라도 분석하는 양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지를 고르는 두 사람의 기준은 시작부터 미묘하게 결이 달랐고, 그만큼 각자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디자인과 시각적인 조화에 일가견이 있는 웬즈는 평소 파스텔 톤이나 연보라색, 은은하고 정갈한 미감을 선호하는 만큼, 과하게 번쩍거리지 않으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세련된 형태에 시선을 두었다. 반면 평생을 총기와 탄환, 실용성과 효율의 세계에서 살아온 예준에게 장신구란 그저 거추장스러운 금속 덩어리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웬즈의 네 번째 손가락에 평생 묶여 있을 물건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기준은 지독할 정도로 명확했다. 첫째, 사격이나 물 속성 파장을 운용할 때, 혹은 웬즈가 취미로 뜨개질을 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손가락에 걸리적거리지 않을 것. 둘째, 그 어떤 외부 충격에도 쉽게 긁히거나 변형되지 않을 만큼 단단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가 봐도 이 여자가 임자가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선명한 존재감을 가질 것.
예준이 검지 끝으로 화려한 솔리테어 링을 가볍게 툭 쳐내며 시니컬하게 중얼거렸다. 무뚝뚝한 어조였지만, 그 시선 끝은 온통 웬즈의 작고 예쁜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웬즈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감겨 있던 얇은 종이 영수증 반지를 제 손으로 직접 풀어주면서, 그는 속으로 수십 번이나 다짐했었다. 찢어질까 봐 조마조마해야 하는 임시방편 따위가 아니라, 자신들의 관계처럼 절대 끊어지지 않을 완벽한 실체를 오늘 반드시 끼워주겠다고. 왜 이토록 반지 하나에 사활을 걸듯 집착하게 되는지 스스로도 우습기 짝이 없었지만, 이유를 파고들면 답은 언제나 하나였다. 오년 동안 아무것도 갖지 않기로 결심했던 남자가 처음으로 탐낸 단 하나의 세상이 바로 눈앞의 여자였고, 그 세상을 평생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가장 눈부신 형태로 증명하고 싶었으니까.
트레이 몇 개가 물려나가고, 마침내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멈춘 곳에는 백금 소재의 웨딩 밴드 한 쌍이 놓여 있었다. 차가운 금속성을 띠면서도 표면을 미세한 브러시드 무광으로 마감해, 예준의 애쉬 블론드 머리카락이나 그가 쓰던 은빛 탄환처럼 절제되고 서늘한 기품을 풍기는 디자인이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밴드 중앙을 따라 흐르는 유연한 곡선이었다. 마치 살랑이는 바람의 궤적 같기도 하고,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 같기도 한 입체적인 라인이 반지 전체를 감싸며 두 개의 결이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형태였다. 거기에 여성용 반지에는 그 물결의 중심을 따라 아주 작고 투명한 페일 라벤더 빛깔의 사파이어와 아이스 블루 다이아몬드가 매립형으로 촘촘히 박혀 있어, 표면이 매끄러우면서도 빛을 받을 때마다 웬즈의 머리색과 예준의 눈동자 색이 동시에 반짝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예준은 망설임 없이 그 반지를 집어 들었다. 차갑고 묵직한 플래티넘의 감촉이 손끝의 미세한 신경 진동을 묵직하게 눌러주었다. 이 디자인을 고른 이유는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바람과 물. 본래라면 섞일 리 없던 두 이질적인 파장이 강제 각인이라는 거친 폭풍으로 부딪혀, 마침내 서로를 할퀴는 대신 가장 완벽한 안식처로 맞물리게 된 두 사람의 시간 그 자체를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튀어나온 난집 없이 보석을 금속 안으로 깊게 품은 형태 또한, 겉으로는 차갑고 무던해 보여도 가장 깊은 곳에 서로를 향한 뜨거운 진심을 감추고 살아가는 두 사람의 방식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다.
그는 부티크 직원에게 반지 안쪽에 새길 각인 문구를 직접 적어 건넸다. 자신의 반지에는 그녀의 본명과 코드네임을, 그녀의 반지에는 자신의 본명과 코드네임을 교차해 넣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두 사람의 서사가 시작되고 완성된 날짜를 나란히 적어 내려가는 손끝에 묵직한 힘이 들어갔다. 직원이 각인과 최종 폴리싱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 동안, 예준은 소파에 기대앉아 웬즈의 빈 약지를 엄지손가락으로 끊임없이 만지작거렸다. 부드러운 살결 위로 곧 자리 잡게 될 차가운 금속의 무게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목구멍 안쪽이 뻐근해질 만큼 벅찬 감각이 차올랐다.
잠시 후, 벨벳 케이스에 담겨 돌아온 완성된 반지를 마주한 예준은 숨을 짧게 들이켰다. 그는 웬즈의 왼손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올림픽 결선 사대에서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었을 때보다 더한 긴장감이 척추를 타고 흐르는데도, 신기하게도 손끝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요했다. 그는 반지를 집어 들어, 웬즈의 가늘고 예쁜 네 번째 손가락 마디를 지나 가장 안쪽 자리까지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밀어 넣었다. 차가운 백금이 따뜻한 피부에 밀착되며 마침내 완벽한 제자리를 찾았다.
반지가 끼워진 웬즈의 약지 위로, 예준이 자신의 왼손에 끼운 똑같은 물결 문양의 플래티넘 링을 나란히 포개어 맞대었다. 핀 조명 아래서 나란히 맞닿은 두 개의 백금 반지가 차갑고도 영원한 빛을 내뿜었다. 그는 맞잡은 그녀의 손을 그대로 끌어올려, 새로 끼워진 반지 위와 손등에 길고 묵직한 입맞춤을 내렸다. 입술이 떨어진 자리에는 그 어떤 가이딩보다도 깊고 선명한 안도감이 두 사람 사이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