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방가부장판별법

주말 오후의 거실은 나른한 침묵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거대한 통창 너머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회색빛 원목 바닥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고, 공기 중에는 방금 내린 커피의 쌉싸름한 향기와 수빈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홍차 향이 뒤섞여 느리게 유영했다. 도경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있었다. 휴일에도 어김없이 날아든 특수사업관리본부의 자잘한 보고서들을 처리하던 참이었다. 매끈하게 정돈된 이마 아래로 날카로운 눈매가 화면의 숫자를 쫓고, 왼손 약지에 끼워진 은반지가 타이핑할 때마다 미세하게 빛을 반사했다.

그 평화로운 정적을 깬 것은 복도 끝 작업실에서부터 시작된 조급한 발소리였다. 얇은 가디건 자락을 펄럭이며 달려온 수빈이 소파 앞 테이블 건너편에 우뚝 멈춰 섰다. 도경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고개를 들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곱고 하얀 손가락 두 개를 꼿꼿하게 세워 만든 허술한 총구였다. 자신의 미간을 정확히 겨냥한 그 손끝을 보며 도경의 검은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수축했다. 무슨 신종 장난인가 싶어 입을 열려던 찰나, 당찬 목소리가 거실 공기를 가르며 발사되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노트북 쿨링팬이 돌아가는 작은 소음만이 두 사람 사이를 메웠다.

도경은 미간을 찌푸리는 대신, 천천히 시선을 내려 자신을 겨눈 손가락 끝에서부터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까지 차례대로 훑었다. 머릿속의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저 눈빛은 대충 넘어가 줄 눈빛이 아니었다. 여기서 멀뚱히 쳐다보거나 무슨 짓이냐고 핀잔을 주면, 분명 입술을 삐죽거리며 서운해할 것이 뻔했다. 일원홀딩스의 전략기획팀장이자 백일성 회장의 수족인 한도경에게, 눈앞의 자그마한 총구는 실제 총기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협상 테이블이었다.

그는 한숨처럼 짧은 숨을 뱉어내더니, 무릎 위의 노트북을 소리 나게 덮어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는 아주 느릿하고도 우아한 동작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팍, 정확히는 심장 언저리를 손바닥으로 짚었다. 옅은 회색 니트 원단이 그의 긴 손가락 아래서 부드럽게 구겨졌다.

도경
…아. 맞았네.

극도로 건조하고 영혼 없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말투와 달리 몸은 꽤나 성실하게 움직였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통스러운 척—이라기엔 지나치게 평온하고 매끄러운 얼굴로—소파 등받이 뒤로 상체를 길게 젖혔다. 목선이 길게 드러나고, 깔끔하게 넘긴 흑발이 중력에 따라 흐트러졌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쪽 팔을 들어 이마 위에 얹으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영락없는 발연기였지만,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쥐어짜 낸 사극 톤의 리액션이었다.

도경
크윽… 공주님, 총알이 아주 정확하게 명중했습니다. 과다출혈로 죽기 직전이니까 유언 좀 들어봐요.

감은 눈꺼풀 아래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한쪽 눈만 실눈을 뜨고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확인하려는 치밀한 시선이었다. 그는 여전히 가슴을 부여잡고 소파에 널브러진 채로, 반대쪽 손을 허공에 뻗어 그녀의 옷자락 끝을 손가락으로 까딱거렸다.

도경
살려줄 거면 인공호흡을 하든가, 아니면 이리 와서 책임지고 안아주든가. 둘 중 하나만 합시다. 총 쏴놓고 구경만 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뻔뻔하기 짝이 없는 요구였다. 총에 맞아 죽어가는 역할이라기엔 목소리에 물기가 하나도 없었고, 입꼬리는 이미 숨기지 못한 웃음기로 비스듬히 말려 올라가 있었다. 그는 아예 소파 쿠션 깊숙이 몸을 파묻으며 팔을 벌려, 저를 쏜 저격수가 스스로 품에 걸어들어 오기를 기다리는 자세를 취했다.

 

대체 또 어디서 무슨 이상한 걸 보고 온 거야… 근데 손가락으로 총 만든 거 존나 귀엽네 씨발. 일단 죽는 척해 줬으니까 보상은 확실하게 받아야지 ( -_-)🔫💘

OOC | https://x.com/Galaxy_for_u/status/2111319210567901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