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 S급 전용관의 두꺼운 방음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에덴의 개인실 안으로 낯익은 발소리가 성큼성큼 파고들었다. 오후의 나른한 빛이 블라인드 틈새로 잘게 부서져 내리고, 실내에는 차가운 금속 세정제 냄새와 베티버 향수가 미묘하게 섞여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소파 테이블 위에 하얀 천을 깔아두고 제 전용 총기를 분해해 닦고 있던 에덴은,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기척에 미간부터 좁히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헐렁한 흰색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인 그의 매끄러운 팔뚝 위로, 창가에서 흘러든 서늘한 그늘이 길게 졌다. 그리고 그가 마주한 것은, 다짜고짜 코앞까지 달려와 두 손가락을 편 채 제 미간 한가운데로 손가락 총구를 들이밀며 우렁차게 기합을 지르는 웬즈의 모습이었다.
실내의 고요한 공기가 그 당돌한 목소리에 갈라지며 미세하게 진동했다. 에덴의 손안에서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총열을 문지르던 마른 융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안광 없는 하늘색 눈동자가 눈앞에서 흔들리는 하얗고 가느다란 검지와 중지 끝으로 천천히 초점을 맞췄다. 찰나의 정적 속에서 그의 동공이 아주 미세하게 수축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풀렸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에덴의 머릿속에서 고도로 훈련된 전술 회로가 헛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신종 파장 이상 징후인가? 아니면 E.D.P.에서 새로 개발한 기습 훈련? 그것도 아니면 오늘 점심으로 먹은 메뉴에 뭔가 잘못된 성분이 들어갔나. 그는 턱선을 매끄럽게 따라 흐르는 빛 아래서 눈꺼풀을 한 번 느리게 깜빡이며, 웬즈의 손가락 총구와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훑었다.
기대했을 법한 비명이나 황당하다는 물음표 대신, 에덴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것은 지극히 건조하고도 냉정한 사격 코치의 품평이었다. 전직 올림픽 권총 사격 금메달리스트의 눈앞에서, 그것도 아크에서 가장 비싼 탄환을 쓰는 저격수의 면전에서 손가락 총이라니. 심지어 손목은 비스듬히 꺾여 있고, 조준선은 그의 미간에서 일 센티미터나 왼쪽으로 빗나가 있었다. 방아쇠 역할을 해야 할 엄지손가락은 까딱거리지도 않은 채 허공에 어정쩡하게 들려 있지 않은가. 에덴은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짧게 흘리며, 손에 들고 있던 총기 부품과 융을 테이블 위 흰 천 위에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쇠와 천이 맞닿는 둔탁하고도 부드러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는 소파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바스락거리는 셔츠 마찰음이 귓가를 스치고, 그에게서 풍기는 서늘한 박하 향과 쇠 냄새가 순식간에 두 사람 사이의 좁은 간격을 메웠다. 에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손을 뻗어, 제 얼굴 앞에 들이밀어진 웬즈의 손가락 총열을 검지와 중지로 가볍게 감싸 쥐었다. 방아쇠를 당기느라 단단해진 그의 매끄러운 손가락 안쪽 살결이 그녀의 여린 손가락 마디에 닿자, 체온의 차이가 선명하게 전해졌다. 그는 그대로 그녀의 손목을 아주 살짝 비틀어 각도를 교정하더니, 그 작고 하얀 손가락 끝을 끌어당겨 제 왼쪽 가슴팍, 정확히 심장이 뛰고 있는 셔츠 위쪽에 꾹 갖다 댔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특유의 시니컬한 물기가 배어 있었지만, 손목을 감싸 쥔 손길만큼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얇은 흰색 셔츠 너머로 규칙적이고 묵직하게 박동하는 그의 심장 고동이 그녀의 손가락 끝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쿵, 쿵. 평온하던 그 박동이 그녀의 손길이 닿자마자 반 박자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에덴은 속으로 낮게 혀를 찼다. 하. 인터넷에서 또 무슨 이상한 걸 보고 와서는 이 난리인지 모르겠군. 하지만 더 한심한 건, 이 말도 안 되는 소꿉장난에 진지하게 조준점을 수정해 주고 있는 자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귀찮다고 손바닥으로 쳐내고 담배나 물었을 텐데, 지금 그의 손은 그녀의 손가락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에덴은 고개를 특유의 버릇대로 천천히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아래에서 위로 웬즈의 눈동자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애쉬 블론드 앞머리가 이마를 스치며 사르르 흘러내렸고, 그 아래로 드러난 눈매가 얄미울 정도로 매끄럽게 휘어졌다. 이왕 총을 맞았으니, 이 어설픈 저격수가 원하는 대로 죽어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나. 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제 심장 위에 고정한 채로,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느슨하고 나른한 몸짓으로 소파 등받이에 깊숙이 등을 기댔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목을 쥔 채로 몸을 뒤로 젖히자, 잡힌 손에 이끌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세상에서 가장 영혼 없고 평탄한 톤으로 국어책을 읽듯 비명을 내뱉은 에덴이, 한쪽 눈을 질끈 감는 척하며 고개를 소파 헤드레스트 위로 툭 떨구었다. 길고 매끄러운 목선이 훤히 드러나며 셔츠 깃 사이로 쇄골의 깊은 음영이 패였다. 하지만 감기지 않은 나머지 한쪽 하늘색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이며 웬즈의 반응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입꼬리는 숨기지도 못한 채 비스듬히 호선을 그렸고, 가슴팍에 대어진 그녀의 손가락 위로는 그의 손바닥이 한 겹 더 단단하게 포개졌다. 도망가지 못하게 완전히 가두어 둔 꼴이었다.
고개를 젖힌 채로 툭 던진 마지막 한마디는, 장난이라기엔 지나치게 낮고 은근했다. 에덴은 제 심장 위에서 꼼짝 못 하고 잡혀 있는 작은 손을 엄지손가락으로 느리게 쓸어내렸다. 매끄러운 피부끼리 마찰하는 감촉이 간지럽게 신경을 타고 올라왔다. 서방이든 가부장이든 그런 세속적인 단어 따위는 알 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을 향해 손가락 총을 쏘며 달려온 이 당돌한 센티넬을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는 빈 손으로 소파 옆자리를 툭, 두드리며 어서 이쪽으로 오라는 무언의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