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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가부장판별법

오후 세 시의 나른한 채광이 거실 소파 등받이를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은재는 소파 밑바닥에 등을 기대고 앉아,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막 뜯은 컵라면 뚜껑을 돌돌 말아 쥐고 있었다. 편의점 야간 근무를 마치고 한숨 자고 일어난 뒤의, 뼈마디가 다 풀어진 듯한 나른함이었다. 헐렁한 회색 반팔 티셔츠 목덜미가 한쪽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려, 쇄골 끝자락의 매끈한 살결이 햇살에 희미하게 번들거렸다.

젓가락을 쪼개려는 순간이었다. 작업실 쪽에서 파스텔 톤 러그를 밟는 발소리가 타다닥 가까워지더니, 시야 한가운데로 고운 손가락 두 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검지와 중지를 가지런히 펴고 엄지를 세운, 누가 봐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권총 모양이었다.

그리고 거실 공기를 찢는 해맑은 총성.

은재의 손에서 나무젓가락이 멈췄다. 속눈썹이 한 번, 아주 느리게 깜빡였다.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시선이 총구 역할을 맡은 수빈의 손끝에서 출발해, 장난기가 덕지덕지 묻어나는 그녀의 눈동자까지 천천히 타고 올라갔다. 귀에 주렁주렁 매달린 은색 피어싱들이 고갯짓을 따라 짤랑, 아주 작은 금속음을 냈다.

삼 초쯤 정적이 흘렀다. 라면에서 피어오르는 김만 두 사람 사이에서 아지랑이처럼 흔들렸다.

젠
…뭐 하냐.

낮게 깔린 목소리는 기가 막힌다는 듯 툭 던져졌지만, 정작 그의 몸은 말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소리 안 나게 내려놓더니, 문신이 새겨진 오른손 검지로 자기 왼쪽 가슴팍을 툭 짚었다. 그리곤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 사이로 헛바람을 들이켰다.

젠
…어디 쏜 건데, 지금. 심장?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상체를 뒤로 젖히며 소파 등받이에 목을 꺾었다. 그냥 쓰러지는 법이 없었다. 헐렁한 티셔츠 자락이 쓸려 올라가며 매끈한 옆구리가 드러났고, 그는 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쥔 채 바닥에 등을 대고 길게 드러누웠다. 아까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 주려고 구부정하게 웅크리고 있던 다리까지 쭉 뻗으니, 거실 러그 반쪽이 그의 몸으로 꽉 찼다.

그 와중에도 테이블 위의 컵라면은 절대 안 건드리고 피해 눕는 치밀함이었다.

바닥에 대자로 뻗은 은재가 눈만 도르륵 굴려 수빈을 올려다보았다. 죽은 척을 하려다 말고, 문득 본인의 원래 성질머리가 고개를 든 모양이었다.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말려 올라갔다.

젠
야, 총만 쏘고 끝이야? 원래 이럴 땐 총 맞은 포로한테 와서 발로 한 번 밟아 주고, 살려 달라고 빌어 보라든지… 뭐 그런 거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는 가슴팍에 올렸던 손을 슬쩍 내려, 자기 목덜미 언저리를 가리켰다. 며칠 전 같이 사 온 목줄이라도 당장 가져오라는 듯한, 뻔뻔하고도 은근한 눈빛이었다. 그러더니 아예 두 팔을 머리 위로 깍지 끼고 누워, 밟히기 딱 좋게 배를 내밀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젠
빨리 와서 확인 사살을 하든가, 인공호흡을 하든가 해. 나 지금 피 엄청 흘리는 중이거든. 라면 불기 전에 해결해 주시면 감사하겠는데, 주인님.

다 죽어 가는 시체 역할이라기엔 목소리가 너무 멀쩡했고, 마지막에 슬쩍 붙인 존댓말 끝자락에는 대놓고 놀아 달라는 기색이 뚝뚝 묻어났다. 그는 뻗은 발끝으로 수빈의 발목을 툭, 건드리며 재촉하듯 턱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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