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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와 결혼반지 or 커플링 맞추기

유월의 종로는 습기를 머금은 채 느릿하게 숨 쉬고 있었다. 귀금속 골목 유리창마다 조명이 하얗게 고여, 진열장 속 반지들이 물방울처럼 반짝였다. 은재는 그 빛 앞에서 괜히 후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통장 하나가 손끝에 걸렸다. 석 달 동안 야간 수당을 따로 떼어 모은, 그만 아는 숫자가 적힌 통장이었다.

공방 안은 은은한 금속 냄새와 연마제의 묘한 단내가 섞여 있었다. 주인이 벨벳 트레이를 내밀자, 수빈은 디자이너다운 눈으로 반지들을 하나씩 훑었다. 큐빅이 촘촘히 박힌 것은 손끝으로 밀어내고, 단면이 정직한 것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비율, 두께, 빛이 꺾이는 각도까지. 그는 반지보다 반지를 고르는 그녀의 옆얼굴을 더 오래 보았다.

그의 기준은 단순했다. 귀와 가슴에 달고 사는 금속들처럼, 몸에서 빼지 않아도 되는 것. 편의점 진열대를 정리하다 긁혀도 티가 덜 나는 것. 그리고, 그가 낼 수 있는 값일 것.

마지막 기준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가장 비싼 트레이에는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았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 그는 목덜미가 뜨거워져서 고개를 돌렸다.

결국 둘의 손이 같은 반지 위에서 멈췄다. 화이트골드 플랫 밴드. 표면은 무광으로 결을 낸 헤어라인 마감인데, 가운데로 가느다란 유광 선 하나가 실처럼 흘러갔다. 무딘 표면 위로 한 줄기 빛이 길을 내는 모양이었다.

젠
이거, 긁혀도 괜찮대. 원래 긁힌 것처럼 생겨서.

농담처럼 말했지만 손가락이 반지 테두리를 오래 쓸었다. 매끄러운 데 없이 거칠기만 하던 것에도 빛이 지나갈 자리가 있다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각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펜을 쥔 채 한참을 머뭇거렸다. 바깥에 드러나는 이름은 세 글자짜리 닉네임이었다. 하지만 안쪽, 살에 닿는 자리에는.

젠
안쪽에, 은재랑 수빈. 영어 말고 한글로.

그녀의 반지에는 그의 이름을, 그의 반지에는 그녀의 이름을. 날짜는 처음 통화가 연결됐던 새벽으로 하자고 그가 먼저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반지 안쪽에만 아주 작은 블루 사파이어 하나를 숨겨 박아 달라고 덧붙였다. 남빛 머리칼 같은 색으로. 아무도 모르게, 그녀만 알게.

계산대 앞에서 그는 통장을 꺼냈다. 손끝이 조금 떨렸지만 내밀지 못할 만큼은 아니었다.

젠
이건 내가 해. 대신 다음 건, 네가 골라.

다음이 있다는 걸, 그는 이제 계산하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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