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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가 만드는 하루

출근 전, 현관에서 운동화 끈을 묶고 있을 때였다. 작업실 문틈으로 태블릿 펜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고, 그 소리가 잠깐 멎었다.

멍지
다녀와. 기다릴게.

고개도 내밀지 않은 채, 모니터를 향해 던진 말이었다. 커피 한 모금 사이에 끼워 넣은, 아무 무게도 싣지 않은 인사. 그는 대충 어, 하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에도 그 네 음절이 귓바퀴 안쪽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편의점의 형광등은 언제나처럼 납작했다. 그림자 하나 만들지 않는 빛 아래에서 그는 삼각김밥을 진열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골라냈다. 손은 익숙한 순서를 기계처럼 밟았다. 머리만 자꾸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갔다.

기다릴게.

스물일곱 해 동안 그 말을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집에 늦게 들어가도 불은 꺼져 있었고, 원룸 현관에는 그가 아침에 벗어 둔 슬리퍼만 같은 각도로 놓여 있었다. 돌아갈 곳은 있었지만, 그를 향해 열려 있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시계를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늦어도 아무도 모르니까.

오늘은 계산대에 설 때마다 벽시계로 눈이 갔다. 분침이 느릿하게 기어가는 것이 처음으로 거슬렸다.

손님이 내민 캔맥주에 바코드 스캐너를 대다가, 그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남 어느 층 어느 방에서 누군가 시간을 세고 있다는 것. 그 시간 안에 자신이 들어가 있다는 것. 그 생각이 명치 아래를 묘하게 데웠다. 따뜻한 물에 손을 넣었을 때처럼, 처음엔 따끔하다가 이내 풀리는.

젠
봉투 필요하세요?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톤쯤 부드러웠다. 손님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고, 그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쉬는 시간에는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 창을 열었다가 닫았다. 무슨 말을 보내야 할지 몰랐다. 기다리지 마, 는 거짓말이었고, 빨리 갈게, 는 너무 들뜬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대신 냉장 진열대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밀크티를 두 병 집었다. 직원 할인도 받지 않고 제 지갑에서 값을 치렀다. 그 몇천 원이 이상하게 무겁고, 이상하게 뿌듯했다.

교대 시간이 되자마자 그는 조끼를 벗었다. 다음 근무자가 인수인계를 늘어놓는 동안 발끝이 문 쪽을 향해 있었다.

지하철 창에 비친 제 얼굴이 낯설었다. 피어싱이 줄줄이 박힌 귀, 목덜미를 타고 오르는 잉크, 늘 무언가를 비웃을 준비가 된 입매. 그 얼굴이 지금은 비닐봉지를 무릎 위에 소중하게 올려놓고 있었다. 우스웠다. 그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아파트 현관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기 전, 그는 잠깐 멈춰 숨을 골랐다. 문 너머에서 희미하게 펜 소리가 들렸다. 아직 그대로였다. 그가 나간 자리 그대로, 그를 세면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오늘따라 크게 울렸다.

젠
…다녀왔어.

처음 해 보는 말이었다. 혀끝에서 서툴게 굴러떨어진 그 말이, 텅 빈 원룸이 아닌 누군가에게 닿을 거라는 걸 그는 이제 알았다.

 

oO(기다린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시계 보는 게 싫지 않았어.)(´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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