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의 엄지가 — 스크롤을 멈추었다.
화면 위에 떠 있는 글. 하얀 배경에 검은 글씨. 『서방과 가부장을 구분하는 방법』. 수빈의 입꼬리가 — 씰룩거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참지 못하고 — 볼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고 빵야!! 를 외쳤을 때. "큭…" 하고 쓰러지면 서방. "?" 하고 보고 있으면 가부장.
수빈의 검지가 화면 위에서 — 멈춘 채 허공을 톡톡 두드렸다. 눈동자가 왼쪽 상단을 — 올려다보았다. 장주군의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다. 탁한 회안. 무표정.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 입. 수빈의 볼에서 바람이 — 새어 나왔다.
수빈은 핸드폰을 소파 위에 — 던졌다. 슬리퍼를 끌고 현관으로 — 갔다. 문을 열었다.
주군은 마당에 있었다.
오전의 햇살 아래, 어제 장터에서 사 온 레몬 나무 묘목 앞에 쪼그려 앉아 — 삽으로 흙을 파고 있었다. 검은 맨투맨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팔뚝에 흙이 — 묻어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 하나가 관자놀이를 타고 — 턱선까지 흘러내리고 있었으나 주군은 닦지 않았다. 삽날이 땅을 — 파고들 때마다 등 근육이 맨투맨 안쪽에서 — 움직였다.
수빈은 슬리퍼를 끌며 — 성큼성큼 걸었다. 주군의 등을 향해. 그림자가 주군의 어깨 위로 — 드리워졌다.
주군의 삽질이 —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기 전에 수빈의 홍차향이 — 먼저 도착했으므로. 주군이 고개를 들어 올리는 속도는 — 느긋했다. 턱부터 코, 코에서 눈으로. 탁한 회안이 수빈을 — 올려다보았다. 역광 속에서 수빈의 얼굴이 — 어두웠고, 흐트러진 반곱슬 머리카락이 바람에 — 날리고 있었다.
수빈의 오른손이 — 올라갔다.
검지와 중지를 모아 총구를 만들고, 엄지를 — 세웠다. 그 총구가 주군의 미간을 — 겨누었다. 정확히. 수빈의 검은 눈동자가 장난기로 — 번들거렸다.
수빈의 엄지가 — 떨어졌다. 반동까지 완벽한 폼.
주군은.
쪼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 수빈을 올려다보았다.
탁한 회안이 수빈의 손가락 총을 — 보았다. 수빈의 얼굴을 — 보았다. 다시 손가락 총을 — 보았다.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 지나갔다.
주군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무표정. 삽을 쥔 손이 흙 위에 — 얹혀진 채. 검은 속눈썹이 한 번 — 깜빡였다. 느리게.
삽날이 흙 위에 — 툭 놓였다. 주군이 고개를 돌려 다시 묘목을 — 바라보았다. 흙을 고르던 손이 — 멈추지도, 빨라지지도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무시.
수빈의 손가락 총이 허공에서 — 얼어붙었다.
가부장이었다.
수빈의 입이 — 벌어졌다. 아, 하는 탄식도 웃음도 아닌 공기가 새어 나왔다. 입꼬리가 씰룩거리다가 — 결국 한쪽으로 삐뚤어졌다. 수빈의 팔이 축 — 내려왔다.
주군은 흙을 — 다독이고 있었다. 묘목 뿌리 주변을 손바닥으로 — 꾹꾹 눌러가며. 수빈의 항의를 등 뒤로 — 흘렸다.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들을 필요를 — 못 느끼는 것이었다.
수빈의 슬리퍼가 흙바닥을 — 탁 찼다.
수빈의 체중이 주군의 등판에 — 실렸다.
갑자기. 예고 없이. 쪼그려 앉은 주군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 쏠렸고, 삽을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수빈의 가슴이 맨투맨 위로 — 눌렸다. 니트 사이로 전해지는 체온이 견갑골 사이를 — 파고들었다. 수빈의 턱이 주군의 어깨뼈 위에 — 걸쳤다. 홍차향이 바람 대신 — 왔다.
궁시렁거리는 목소리가 주군의 귓바퀴를 — 간질였다. 불만인지 투정인지 경계가 없는, 수빈 특유의 — 그 톤. 주군의 손이 묘목 뿌리 위에서 — 멈추었다. 멈춘 것이 아니라, 등에 실린 무게를 — 가늠하고 있었다. 넘어지면 수빈이 깔리니까.
수빈의 손가락이 주군의 옆구리를 — 찔렀다.
맨투맨 위를 뚫고 들어온 검지 끝의 압력이 갈비뼈 사이를 — 눌렀다. 주군의 복근이 반사적으로 — 수축했다. 얇은 면직물 너머로 수빈의 손가락 마디가 느껴졌다. 칼이라기엔 둥글고, 장난이라기엔 — 힘이 들어가 있었다.
주군의 고개가 — 돌아갔다. 반만. 턱 위로 수빈의 얼굴이 — 가까웠다.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주군이 숨을 들이쉬면 수빈의 속눈썹이 — 닿을 거리였다. 수빈의 검은 눈동자 안에 장난기가 — 가득 차 있었다. 볼이 살짝 부풀어 있었고, 입꼬리가 한쪽으로 — 말려 올라가 있었다. 방금 전 무시당한 것에 대한 복수를 치르는 중이라는 것이 — 명백했다.
주군의 눈이 수빈의 눈을 — 들여다보았다. 탁한 회안 위로 아침 햇살이 —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 없었다. 입술은 — 닫혀 있었다. 수빈의 선전포고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고요하고, 무시하기엔 — 시선이 수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바람이 정원의 풀잎을 — 넘겼다. 레몬 나무 묘목의 이파리가 — 흔들렸다.
주군의 흙 묻은 손이 — 올라왔다.
수빈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던 손, 그 손목을 — 잡았다. 칼 대신 찔렀다던 검지를 — 펴지도 않고 접히지도 않는 상태로, 주군의 손바닥 안에 — 가두었다. 흙의 까슬한 촉감이 수빈의 손등에 — 번졌다.
주군이 잡은 수빈의 손을 — 자기 왼쪽 가슴에 가져다 놓았다.
맨투맨 위로. 심장 위로. 수빈의 손바닥 아래에서 심장이 — 뛰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느리게. 빨라지지 않은 맥박이 수빈의 손금 사이로 — 전해졌다.
건조하게. 시선은 수빈에게 — 고정된 채. 탁한 회안 속에서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 보였다. 주군의 엄지가 수빈의 손등 위에서 한 번 — 쓸렸다. 흙 묻은 지문이 수빈의 하얀 피부 위에 —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 다시 묘목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수빈의 손을 제 가슴 위에 — 올려놓은 채. 남은 한 손으로 흙을 — 다독이기 시작했다. 수빈의 체중을 등에 진 채. 귀찮은 듯. 느긋한 듯. 수빈의 손바닥 아래에서 주군의 심장이 — 반 박자, 빨라진 것을 본인만 — 모른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