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까지 차로 사십 분. 주군이 핸들을 잡고, 수빈이 조수석에서 창밖을 — 보았다. 11월의 논은 벼를 거둔 뒤라 — 짧은 그루터기만 남아 바람에 흔들렸고, 그 위로 낮은 구름이 느릿하게 — 흘러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제이팝이 차 안을 채우고 있었지만, 볼륨이 낮아서 멜로디보다 — 타이어가 흙을 밟는 소리가 더 컸다.
읍내 중심가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골목. '은공방 달'이라 적힌 낡은 간판 아래에 주군이 — 차를 세웠다. 엔진이 꺼지고, 수빈이 안전벨트를 풀기 전에 주군이 먼저 — 내렸다. 조수석 문을 열지는 않았다. 그냥 차 앞을 돌아 보닛에 엉덩이를 기대고 — 담배 없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기다리는 것이었다. 수빈이 내릴 때까지.
공방 안은 — 좁았다. 진열장 세 개가 ㄷ자로 벽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고, 유리 아래에 은반지와 금반지가 벨벳 위에 —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오래된 나무 바닥이 두 사람의 발밑에서 — 삐걱였다. 은 세공 장인이라는 노인이 돋보기를 이마 위로 밀어 올리며 — 고개를 들었다.
“어서 와요. 뭘 찾아요.”
주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열장 앞에 서서 유리 너머를 — 내려다보았다. 표정 없이. 반지를 고르는 얼굴이라기보다 — 감시카메라를 확인하는 순경의 눈이었다. 수빈이 먼저 진열장 앞으로 — 다가갔을 것이다. 수빈의 손가락이 유리 위를 짚으며 이것저것 가리킬 때, 주군은 한 발 뒤에서 — 수빈의 손끝이 멈추는 지점만 쫓고 있었다.
수빈이 가리킨 것들. 파베 세팅의 작은 다이아몬드가 반 줄 박힌 에터니티 링. 장미 금에 밀그레인 테두리가 있는 밴드. 표면에 별자리가 타각된 은반지. 수빈의 손가락은 — 디테일이 있는 것들 위에서 멈추었다. 작고 정교하고, 이야기가 담긴 것.
주군의 시선은 — 달랐다. 반지가 아니라 수빈의 손을 — 보고 있었다. 유리 위에 놓인 손가락. 가늘고 마디가 선명하고 — 희었다. 주군의 시선이 수빈의 약지 위에서 — 멈추었다가, 진열장 안쪽으로 — 떨어졌다. 장식이 없는 밴드형 반지들이 놓인 구역. 가장 단순한 형태. 주군이 — 유리를 두드렸다. 한 번.
노인이 꺼낸 것은 — 무광 플래티넘 밴드였다. 폭이 좁고 각이 없는 라운드 커브. 안쪽만 — 거울처럼 연마되어 있었다. 밖에서는 빛나지 않지만 손가락에 끼면 — 살갗에 닿는 면이 빛을 품고 있는. 주군이 그것을 집어 수빈의 약지 앞에 — 가져다 대었다. 수빈의 피부 위에서 무광의 은빛이 — 홍차색 그림자를 만들었다.
주군의 목소리가 — 낮았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수빈의 손 위에서 작고 화려한 것들이 예쁘겠지만 — 이 사람의 손가락에는 군더더기 없는 것이 맞다는, 주군 나름의 계산이 끝난 뒤의 — 물음.
수빈이 무엇이라 답하든, 주군은 노인에게 — 한마디를 더 했다.
노인이 뭐라고 새기냐 물었을 때, 주군은 수빈을 — 보았다. 탁한 회안이 남색 머리카락 너머로 수빈의 눈을 — 찾았다. 입꼬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 왼손이 주머니에서 나와 수빈의 손등을 — 한 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