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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을 새로 쓰고 싶어,

아빠가 걱정되니까 일원타워 근처에서 살라며 아파트를 사줬던 게 스물두 살 이었으니까.

네가 팀장이 되고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을 거야. 우리 생각보다 만난 지 오래되었더라.

삼 년 전 그날 말이야.

팬클럽을 하게 된 게 처음부터냐고 물어보면 글쎄. 언제부터인지 도통 기억도 안 나.

네가 매일 갑옷처럼 입던 정장이, 딱 떨어지던 자켓 자락이 드물게 회색이 아니었던 날이었을 거야. 이상하게 그날 입은 자켓 자락이 기억에 남았거든.

아니, 다들 그렇잖아. 평소랑 다른 구석이 있으면 눈에 남지 않아? 늘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가 그날따라 조금 덜 올라가 있었어. 응. 분명 그랬어.

맞아. 사실 매일 있을법한 날이지. 전혀 특별하지 않았어. 영화 같은 순간도 아니었고. 아무 날도 아니었어. 네가 내게 다정했던 것도 아니었어.


웃기게도 내가 사고를 친 게 아니라 오빠들이 친 사고 탓이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재밌지 않아?

작은오빠가 술김이 남은 주제에 운전대를 또 잡았던 것도. 그렇게 접촉 사고가 났던 상대방이 하필이면 같이 타고 있던 큰오빠가 만났던 여자였던 것도.

응. 그 사고 수습하러 네가 왔어. 정확히 기억해.

만날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너를 그래서 처음 만났으니까.

네 이야기를 들은 적 없었던 건 아니야. 아빠가 오빠들하고 같이 일하는 팀장이 하나 있다고, 나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아마 그 팀장이 올 거라고 그랬었거든. 농담으로 베이비시터랬나. 오우. 네가 들으면 엄청 싫어하겠다.

여하튼. 들었을 때는 그게 와닿지도 않았어. 알잖아. 내가 사고를 칠 일이 뭐가 있겠어. 매일 집에 있고 멀리 가봐야 미술관인 사람에게. 내 삶에 문제가 생겨서 너를 만나기에는 내 시간 대부분이 단조로웠고. 나는 구태여 널 부르고 싶지 않았으니까. 꼭 너라서 그런 건 아니야. 나는 그런 사람이라서. 누구에게 발목 잡는 사람이기 싫어.

맞지. 돌아가서, 처음 만난 날. 생각했지. 저렇게 멋진 사람이 굳이? 오빠들 뒤처리나 해준다고? 내 뒤처리를 해줄 거라고? 근데 멀뚱멀뚱 상황 구경하던 나한테 짜증 낸다. 재밌네.

…재밌네. 정말로. 미간이 저렇게 구겨지는 사람도 있구나. 씨발. 씨발. 저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도 있구나. 똑똑한 사람 같은데 높은 사람 앞에서 체면치레하면서 솔직하지 못하게 굴지 않는구나. 나는 늘 괜찮아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재미가 동경이 되는 건, 우리 만남보다 더 속도가 빨랐어.


너는 전혀 모르겠지만. 아가씨가 미쳐서 뜬금없이 자신을 놀려먹으려고 한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보낸 많은 편지도. 너를 보며 좋아하며 사진을 찍던 마음들도. 네 말들을 모으며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고. 네 생각들로 어느 순간 행복해하고 있었어. 서른 넘은 남자를 고양이로 볼 만큼이니까. 동경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지.

이건 분명 동경이라 불릴 감정이야. 첫사랑일 리 없잖아. 팬클럽 회장이래도?

…왜 아프다는 말을 듣고 찾아와? 이건 치사하잖아. 안 그래? 나는 들추지 않던 걸 네가 찾아와서 자꾸 물어봐. 왜 그러냐고. 뭘 바라는 거냐고. 이러는 게 재미있냐고. 나는 정말 팬클럽에 만족하려 했어. 있지.

오늘 다시 쓰였어. 네 탓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