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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중에 물건쥐어주기

십일월 초의 일요일 오후였다. 손님방이 '도경 방'이 된 지 삼 주째였다. 창가 책상 위에는 결재 서류가 반듯하게 쌓여 있었고, 그 옆에는 누가 몰래 세워 둔 아크릴 스탠드가 서류철에 등을 기댄 채 웃고 있었다. 도경은 의자 등받이에 반쯤 걸터앉은 자세로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는 최윤도였다. 송도 쪽 물류 일정이 하루 밀렸다는, 사람 미간을 조용히 좁히는 종류의 보고였다.

도경
목요일 선적이면 세관 쪽 담당 바뀌는 날이잖습니까. 그날로 밀면 판이 다시 짜여야 돼요.

그때 열린 방문 틈으로 발소리가 슬리퍼를 끌며 들어왔다. 도경은 시선을 서류에서 떼지 않은 채 숫자를 짚어 나갔다. 시야 가장자리로 하얀 손이 불쑥 들어왔다. 손바닥 위에 귤이 하나 있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받아 쥐었다. 귤은 손안에서 서늘하고 말랑했다.

다음은 뜨개바늘이었다. 반쯤 뜨다 만 연보라색 목도리가 매달린 채였다. 그는 귤을 쥔 손 그대로 손가락 두 개를 벌려 그것까지 받았다. 털실 끝이 손목을 간질였다. 윤도의 목소리가 대체 경로를 읊는 동안, 세 번째로 깜고 인형이 왔다. 그는 그것을 겨드랑이에 끼웠다. 네 번째는 숟가락이었다. 다섯 번째는 토끼 귀 머리띠였는데, 이번엔 손이 다 차 있어서 정수리 위로 직접 씌워졌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그것을 받아 주기까지 했다.

하고 나서야, 이상했다.

그는 천천히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왼손에 귤과 털실 목도리, 오른손에 휴대폰과 숟가락, 옆구리에 고양이, 머리 위에는 하얀 털로 된 귀 두 짝. 창유리에 비친 남자는 일원의 전략기획팀장이 아니라 잡화점 진열대였다. 문가에 선 그녀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고 어깨를 떨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 하나가 이쪽을 향해 있었다. 촬영 중이라는 붉은 점이 선명했다.

목덜미부터 열이 올라왔다. 짜증인지 창피함인지, 그도 아니면 저 망할 얼굴이 웃느라 발갛게 달아오른 게 존나 예뻐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도경
형, 그거 화요일 오전으로 당기세요. 세관은 제가 오늘 저녁에 정리합니다. 아뇨, 별일 아니고요. 집에 실험동물 연구원이 하나 살아서요.

통화가 끊기자 방이 조용해졌다. 그는 머리띠를 벗지 않았다. 대신 숟가락으로 귤을 가리키며, 털실 달린 손을 그녀 쪽으로 까딱였다.

도경
논문 결과 나왔죠. 피험자가 다 받았으니까 이제 연구원이 책임지셔야죠. 귤 까서 먹여 주시고, 그 영상은 팬클럽 회장 개인 소장으로만 쓰세요.

그는 인형을 책상에 내려놓고 빈 팔을 벌렸다. 마지막 물건이 하나 남아 있다는 듯이.

도경
이리 오세요. 제일 쓸데없고 제일 황당한 거, 아직 안 주셨잖아요.

 

슬리퍼가 마룻바닥을 두어 번 탁탁 차더니, 그녀가 그대로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도경은 받아 내는 순간에야 제 손이 아직 비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왼손에는 귤과 뜨개바늘, 오른손에는 숟가락. 그는 반사적으로 두 팔을 벌린 채 손목만 바깥으로 꺾어, 물건들이 그녀의 등에 닿지 않게 허공에 띄웠다. 뜨개바늘 끝에 매달린 연보라색 목도리가 그 반동에 휘청, 그네처럼 흔들렸다. 의자 등받이가 둘의 무게에 낮게 삐걱였고, 그는 슬랙스 차림의 다리에 힘을 주어 기울어지는 몸을 버텼다.

머리 위의 토끼 귀가 그 충격에 한쪽으로 비뚜름하게 넘어갔다. 창유리에 비친 꼴은 아까보다 더 처참했다. 잡화를 양손에 든 채 사람 하나를 끌어안고, 귀 한 짝이 꺾인 서른다섯 살 남자. 그는 그 모습을 곁눈으로 확인하고는 짧게 코웃음을 쳤다. 웃음이 비웃음으로 끝나지 않고 목 안에서 자꾸 다른 소리로 바뀌려 들어서, 그는 입술을 한 번 꾹 다물었다.

도경
이거 보세요. 이것까지 받아 버렸잖아요, 조건반사로.

그는 숟가락을 쥔 오른손을 책상 쪽으로 뻗어 서류 더미 위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결재 서류 맨 윗장에 숟가락이 비스듬히 누웠다. 귤은 그녀의 니트 등 위에 슬쩍 올려 두었다. 손이 비자 그제야 팔이 제대로 감겼다. 아이보리 니트의 성긴 짜임이 손바닥 아래에서 오톨도톨하게 만져졌고, 그 아래로 아직 웃음기가 덜 가신 등이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홍차 향이 따뜻하게 코끝에 걸렸다.

창밖은 초겨울답게 해가 일찍 기울고 있었다. 창가 책상 위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하나로 뭉쳐 바닥에 길게 눕혀 놓았다. 토끼 귀 그림자까지 고스란히.

그는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괴려다, 제 머리 위의 머리띠가 걸리적거려 고개를 조금 비틀었다. 벗을 생각은 여전히 없었다. 벗으면 저 웃음소리가 그칠 것 같아서였다. 그런 이유로 체면을 버리는 날이 오리라고는, 일원에 들어온 날의 자신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도경
근데 공주님, 실험은 원래 교차 검증까지 해야 논문이 됩니다. 다음에 회장님이랑 통화하실 때 옆에서 제가 뭐 드리는지 각오하세요.

말끝에 그는 등 위의 귤을 다시 집어 들어 엄지로 꼭지 쪽을 눌렀다. 껍질이 톡 갈라지며 새콤한 향이 둘 사이에서 확 터졌다. 손톱 끝에 노란 즙이 배었다. 먹여 달라고 해 놓고 결국 제 손으로 까고 있다는 걸 그는 굳이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도경
입 벌리세요. 연구원 처우 개선 차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