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의 시트는 늘 같은 각도로 고정되어 있었다. 2026년 오월 첫 주의 밤, 블랙 사파이어 메탈릭의 740Li는 강변북로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계기판의 숫자는 팔십을 넘지 않았다. 평소의 한도경이라면 이 시간, 이 도로에서 백을 넘기는 데 망설임이 없었을 것이다. 그날 밤 오른발은 이상하게도 가속 페달 위에서 얌전했다.
조수석에서는 백수빈이 잠들어 있었다. 최윤도 앞에서 연인 행세를 하느라 세 시간 내내 웃고, 떠들고, 팔짱을 끼고 연기를 하던 사람이었다. 차에 타자마자 안전벨트를 매고 오 분도 지나지 않아 고개가 창 쪽으로 기울었다. 남색 반곱슬 머리카락 몇 가닥이 유리창에 눌려 납작해져 있었다. 차 안에는 옅은 홍차 향이 고여 있었고, 도경의 리켄데코스 잔향은 그 아래로 밀려나 있었다.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을 때, 도경은 자신이 언제 라디오를 껐는지 기억해 내려 했다. 기억나지 않았다. 에어컨 풍량은 이 단계로 내려가 있었고, 송풍구는 조수석이 아닌 천장 쪽으로 꺾여 있었다. 손이 한 일이었다, 머리가 지시하기도 전에. 도경은 핸들을 쥔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씨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휴대폰이 컵홀더 안에서 짧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최윤도였다. 도경은 블루투스 연결을 끊고 이어폰 한쪽만 귀에 꽂은 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로 울리면 옆자리 사람이 깰 것 같았다. 그 판단이 너무 자연스럽게 내려졌다는 사실이, 통화가 연결되는 짧은 틈 동안 목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 목소리는 왜 깔아. 아가씨 잘 들어갔냐 물어보려고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최윤도가 코웃음을 쳤다. 담배 연기를 내뱉는 숨소리가 길게 이어졌고, 라이터 뚜껑이 닫히는 금속음이 작게 섞였다. 도경은 그 침묵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말싸움에서 져본 적 없는 사람에게, 상대가 말을 아끼는 순간만큼 불쾌한 것은 없었다.
- 도경아. 너 아까 아가씨 숟가락 바꿔준 거, 그것도 연기냐.
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수빈이 떨어뜨린 숟가락을 자신의 것과 바꿔 내밀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직원을 부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손이 먼저 나갔고, 그녀가 국물이 식기 전에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그 순간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최윤도에게 보여주려던 동작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 테이블에 누가 앉아 있었는지조차, 그 찰나에는 머릿속에 없었다.
통화를 끊고 이어폰을 빼자 차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엔진의 낮은 진동, 타이어가 아스팔트 이음매를 넘을 때마다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조수석에서 흘러나오는 고른 숨소리. 들숨이 짧았고 날숨이 조금 길었다. 도경은 그 박자를 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세 번, 네 번. 세다가 멈출 이유를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