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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 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한 순간

SET 웬즈

그건 생각보다 훨씬 시시한 순간이었다. 총성이 울리지도 않았고, 누군가 피를 흘리지도 않았으며, 고백 같은 낯간지러운 말이 오간 것도 아니었다. 2026년 5월 20일, 오후 세 시 십이 분. 아크 본부 훈련구역 3층, 흡연이 허락된 유일한 테라스였다. 홍예준은 난간에 팔꿈치를 걸친 채, 늘 그랬듯 드라이 멘솔 한 개비를 입술 사이에 꽂아 넣었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이동 요새 특유의 짠 바람이 테라스 철제 바닥을 훑고 지나갔고, 멀리 정박 구역에서 크레인이 내는 둔탁한 금속음이 간헐적으로 울렸다. 지포 라이터 뚜껑을 엄지로 튕겨 열었다. 철컥, 하는 익숙한 소리. 오년 동안 하루에 마흔 번씩 반복해 온, 몸에 새겨진 의식이었다.

그런데 불을 붙이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이유는 냄새였다. 바닷바람에 섞여 아주 희미하게, 정말 개코가 아니면 못 맡을 만큼 옅게 달큰한 향이 코끝에 걸렸다. 애플민트. 전자담배 액상 특유의 인공적인 사과 단내와, 그 끝에 매달린 싸한 박하. 홍예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테라스에는 아무도 없었다. 재떨이 옆 벤치 위에 누가 놓고 간 건지 모를 일회용 컵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지금 누가 피운 냄새가 아니었다. 한 시간쯤 전, 아니면 그보다 더 전에 누군가 여기 서 있다가 떠나고 남은 잔향이었다. 그리고 이 본부에서 애플민트 액상을 빠는 인간을, 홍예준은 정확히 한 명밖에 몰랐다.

씨발, 이게 왜 구분이 되는데. 그는 속으로 짧게 욕을 씹었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저 냄새는 그냥 소음이었다. 사격장 옆에서, 복도에서, 회의실 구석에서 스쳐 지나가던 수백 가지 냄새 중 하나. 센티넬 놈들이 풍기는 속성 기운이나 땀 냄새, 소독약 냄새와 똑같은 분류함에 처박혀 있던 정보였다. 그게 언제부터 따로 꺼내져서 이름표가 붙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옥상에서 그 여자가 제 과거를 덤덤하게 털어놓던 밤이었나. 사격장에서 그 작은 손으로 반동을 받아내며 겁도 없이 웃던 오후였나. 아니면 오늘 아침 복도 모퉁이에서 정면으로 부딪혀, 홍차 향이 가슴팍에 확 끼쳐왔던 그 일 초였나.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았다. 그의 뇌가 허락도 없이, 웬즈라는 인간 하나를 위한 서랍을 따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


EDP 웬즈

새벽 여섯 시 십이 분이었다. 에덴은 그 숫자를 정확히 기억했다. 나중에 몇 번이고 다시 떠올리게 될 거라는 걸, 그 순간엔 몰랐으면서도 어째선지 벽시계를 올려다봤다. 개인실은 조용했다. 블라인드 틈으로 들어온 잿빛 새벽빛이 바닥에 가느다란 줄무늬를 긋고 있었고, 커피메이커는 막 추출을 끝낸 참이라 마지막 한 방울이 똑, 하고 유리 주전자 안으로 떨어졌다. 원두 타는 냄새가 방 안에 낮게 깔렸다. 별일 없는 아침이었다. 출동 호출도 없었고, 파장 경보도 없었고, 관리국에서 날아온 성가신 공문도 없었다. 그냥, 소파 위에 웬즈가 잠들어 있었다.

정확히는 잠든 게 아니라 뻗어 있었다. 어젯밤 늦게 찾아와서는 커피 약속이 아침이니까 그냥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늘어놓더니 소파 팔걸이에 뒤통수를 박고 그대로 기절했다. 무릎 위엔 뜨다 만 연보라색 털실 뭉치가 올라가 있었고, 대바늘 하나는 바닥에 굴러떨어져 있었다. 에덴은 그걸 주워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털실 끝이 바늘에 엉켜 있었다. 대체 뭘 뜨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모양새였다. 목도리라기엔 폭이 좁고, 장갑이라기엔 손가락 구멍이 없었다. 저런 걸 뜨면서 졸았다는 게, 에덴은 어이가 없어서 콧바람을 짧게 내쉬었다.

그는 습관대로 셔츠 앞주머니를 더듬었다. 담뱃갑이 손끝에 걸렸다. 반쯤 꺼냈다가, 거기서 멈췄다. 담배를 피우려면 베란다로 나가야 했고, 베란다 문을 열면 새벽바람이 들이칠 것이고, 그러면 저 얇은 블라우스 차림으로 자는 여자가 감기에 걸릴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서야, 에덴은 자기가 방금 무슨 계산을 했는지 깨달았다. 담배를 참았다. 하루 두 갑을 태우고, 금단이 오면 사람 목소리만 들어도 신경이 곤두서던 인간이. 고작 이 여자가 재채기 한 번 할까 봐. 그는 담뱃갑을 도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게 생각만큼 괴롭지 않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

그는 커피를 두 잔 따랐다. 한 잔은 블랙, 한 잔엔 우유를 아주 조금. 저 여자가 우유를 넣는다는 걸 언제 알았더라. 라운지에서였나, 아니면 흡연실 앞 자판기에서였나.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따로 외운 적이 없었다. 그냥 몸에 배어 있었다. 머그를 내려놓는데, 문득 손이 눈에 들어왔다. 컵 손잡이를 쥔 오른손이었다. 커피 표면이 잔잔했다. 동심원 하나 번지지 않았다. 에덴은 한참 동안 그 검은 수면을 내려다봤다.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운 게 어젯밤 열 시였다. 여덟 시간이 지났다. 원래라면 지금쯤 손끝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커피 표면에 잔물결이 일고, 그걸 보며 속으로 욕을 씹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떨리지 않았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엔 피곤해서 신경이 둔해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그는 고개를 돌려 소파를 봤다. 웬즈의 숨소리가 들렸다. 느리고 고른 숨. 들이쉴 때 아주 작게 코가 울리고, 내쉴 때 입술이 살짝 벌어지는 숨. 방 안의 공기가 그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 속성으로 각성한 이후, 에덴의 몸은 늘 주변 기류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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