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의 오후는 창틀에 얇게 서리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발단은 세탁기였다.
건조대 위에 걸린 연보라색 목도리. 수빈이 보름 내내 밤마다 코를 세어 가며 뜬 그것이, 지금은 손바닥만 한 펠트 조각이 되어 있었다. 온수 코스. 울 세탁 버튼 바로 옆에 있던 버튼을 주군이 눌렀다.
그는 건조대 앞에 서서 쪼그라든 목도리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었다. 고양이 목에나 맞을 크기였다.
그게 다였다. 사과도 아니고, 변명도 아니었다. 사실 확인. 수빈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그는 목도리를 아끼는 마음에 제일 좋은 코스를 고른 거였다. 그 논리가 너무 주군다워서, 수빈은 웃음이 터지려는 걸 이를 악물고 눌렀다. 여기서 웃으면 진다.
주군의 탁한 회안이 느릿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화난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 계산하는 눈이었다. 그는 펠트 조각을 제 바지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수빈의 무릎 뒤와 등을 한꺼번에 끌어안아 번쩍 들어 올렸다.
현관으로 향하는 걸음이 지나치게 태연했다. 버둥거리는 발에서 털실 실내화 한 짝이 날아가 신발장에 부딪혔다. 그는 그것까지 허리를 굽혀 주워 그녀 발에 도로 끼웠다. 한 손으로. 다른 팔로는 그녀를 단단히 받친 채.
문이 열렸다. 차가운 바람이 마당의 석류나무 가지를 흔들며 들이쳤다. 그는 현관 계단을 내려서며, 그녀 귓가에 낮게 말했다.
수빈은 할 말을 잃었다. 마침 돌담 너머로 경운기를 몰던 오씨 할매가 지나가다 멈춰 섰다. 아이고, 장 순경이 색시를 업고 어디 가노. 주군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후일담 — 수빈] 그날 결국 목도리는 버리지 못했다. 그가 주머니에 넣어 간 펠트 조각은 일주일 뒤 순찰차 열쇠고리가 되어 돌아왔다. 화는 할매 앞에서 '이사요' 소리를 들은 순간 이미 반쯤 날아갔고, 나머지 반은 그날 밤 그가 유튜브로 '울 세탁법'을 검색하는 뒷모습을 보며 날아갔다. 분해서 한 코 더 떴다. 이번엔 라벨에 빨간 글씨로 썼다. '장주군 손대지 마시오.'
[후일담 — 주군] 나가라고 했다. 내 거 챙겨서. 그래서 챙겼다. 칫솔은 새로 사면 되는데, 그건 못 사니까. …틀린 말은 아니잖아.
[주군 28세 | 회색 후드·청바지·은반지 / 자세: 수빈을 안아 든 채 마당에 섬 / 수빈 25세 | 니트 가디건+긴 원피스·털실 실내화 / 자세: 안겨 있음]
[주군's Future plans & Going forward List] • 지금 — 할매한테 인사, 집 안으로 도로 들어가기 • 오늘 — 울 세탁법 공부, 목도리 조각 보관 • 다음 — 새 털실 사 주기(연보라, 두 배)
oO(ㅤ나가라며ㅤ…ㅤ너ㅤ빼고ㅤ내ㅤ거ㅤ없는데ㅤ(=`ω´=)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