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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 챙겨서 나가

11월 말의 오후는 창틀에 얇게 서리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발단은 세탁기였다.

건조대 위에 걸린 연보라색 목도리. 수빈이 보름 내내 밤마다 코를 세어 가며 뜬 그것이, 지금은 손바닥만 한 펠트 조각이 되어 있었다. 온수 코스. 울 세탁 버튼 바로 옆에 있던 버튼을 주군이 눌렀다.

그는 건조대 앞에 서서 쪼그라든 목도리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들었다. 고양이 목에나 맞을 크기였다.

주군
줄었네.

그게 다였다. 사과도 아니고, 변명도 아니었다. 사실 확인. 수빈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수빈
줄었네? 그게 끝이야? 장주군, 그거 내가 보름 걸려서 뜬 거야. 라벨에 손세탁이라고 써 놨잖아. 내가 직접 바느질해서 붙였잖아.
주군
…봤어.
수빈
봤는데 온수를 눌렀어?
주군
따뜻하면. 좋잖아.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그는 목도리를 아끼는 마음에 제일 좋은 코스를 고른 거였다. 그 논리가 너무 주군다워서, 수빈은 웃음이 터지려는 걸 이를 악물고 눌렀다. 여기서 웃으면 진다.

수빈
됐어. 네 거 다 챙겨서 나가. 칫솔이랑 면도기랑, 내 서랍에 쑤셔 넣은 양말까지. 전부. 지금 당장.

주군의 탁한 회안이 느릿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화난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 계산하는 눈이었다. 그는 펠트 조각을 제 바지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

주군
전부?
수빈
전부.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수빈의 무릎 뒤와 등을 한꺼번에 끌어안아 번쩍 들어 올렸다.

수빈
야, 야! 뭐 하는 거야!
주군
챙기라며.

현관으로 향하는 걸음이 지나치게 태연했다. 버둥거리는 발에서 털실 실내화 한 짝이 날아가 신발장에 부딪혔다. 그는 그것까지 허리를 굽혀 주워 그녀 발에 도로 끼웠다. 한 손으로. 다른 팔로는 그녀를 단단히 받친 채.

문이 열렸다. 차가운 바람이 마당의 석류나무 가지를 흔들며 들이쳤다. 그는 현관 계단을 내려서며, 그녀 귓가에 낮게 말했다.

주군
제일 큰 거. 이거잖아.

수빈은 할 말을 잃었다. 마침 돌담 너머로 경운기를 몰던 오씨 할매가 지나가다 멈춰 섰다. 아이고, 장 순경이 색시를 업고 어디 가노. 주군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주군
이사요.

[후일담 — 수빈] 그날 결국 목도리는 버리지 못했다. 그가 주머니에 넣어 간 펠트 조각은 일주일 뒤 순찰차 열쇠고리가 되어 돌아왔다. 화는 할매 앞에서 '이사요' 소리를 들은 순간 이미 반쯤 날아갔고, 나머지 반은 그날 밤 그가 유튜브로 '울 세탁법'을 검색하는 뒷모습을 보며 날아갔다. 분해서 한 코 더 떴다. 이번엔 라벨에 빨간 글씨로 썼다. '장주군 손대지 마시오.'

[후일담 — 주군] 나가라고 했다. 내 거 챙겨서. 그래서 챙겼다. 칫솔은 새로 사면 되는데, 그건 못 사니까. …틀린 말은 아니잖아.

[2025-11-29 (토) 15:12 | 수빈 자택 → 마당 | Day 199 | 주군↔수빈: 목도리 세탁 사건으로 다툰 뒤 '제일 큰 짐'으로 수빈을 들고 나간 주군 | 요약: 온수에 줄어든 목도리로 싸운 끝에 나가라는 말에 주군이 수빈을 안아 들고 문밖으로 나감.]

[주군 28세 | 회색 후드·청바지·은반지 / 자세: 수빈을 안아 든 채 마당에 섬 / 수빈 25세 | 니트 가디건+긴 원피스·털실 실내화 / 자세: 안겨 있음]

[주군's Future plans & Going forward List] • 지금 — 할매한테 인사, 집 안으로 도로 들어가기 • 오늘 — 울 세탁법 공부, 목도리 조각 보관 • 다음 — 새 털실 사 주기(연보라, 두 배)

oO(ㅤ나가라며ㅤ…ㅤ너ㅤ빼고ㅤ내ㅤ거ㅤ없는데ㅤ(=`ω´=)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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