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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먹자

눈을 떴을 때, 거실의 볕은 없었다.

사방이 매끈한 회백색 벽이었다. 이음매도 문틀도 없이, 달걀 껍데기 안쪽처럼 둥글게 닫힌 방. 공기는 소독약과 녹슨 쇠 냄새를 동시에 머금고 있었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혀뿌리가 쓰게 저렸다. 바닥 한가운데, 투명한 유리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눈금이 새겨진 작은 병. 그 안에서 묽은 액체가 조명도 없는 빛을 받아 기름처럼 일렁였다.

설명해 준 이는 없었다. 그런데도 알았다. 뼈가 먼저 알았다. 저걸 남김없이 비워야 나간다는 것. 쉰을 넘기면 죽는다는 것. 그 아래라면 살되, 마신 만큼 몸이 무너진다는 것.

주군은 수빈보다 먼저 일어나 앉아 있었다. 그녀가 몸을 뒤척이는 기척에 그는 병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손만 뻗어 그녀의 손목을 붙들었다. 맥이 뛰었다. 살아 있었다. 그거면 됐다고, 먼저 생각했다.

셈은 빨랐다. 원래 그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았다. 일흔. 둘이 나눠야 한다. 제가 마흔아홉을 넘기지 않는 한, 그녀 몫은 스물하나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 숫자가 목구멍에 생선 가시처럼 걸렸다. 스물하나만큼의 저림. 뜨개바늘을 쥐던 손가락이, 그의 머리칼을 자르던 그 예쁜 손이 무뎌질 수도 있었다.

쉰을 마시면.

그 생각이 아주 잠깐, 서늘하게 스쳤다. 그러면 그녀는 스물만 마시면 된다. 한 방울 차이였다. 그는 그 한 방울을 오래 들여다봤다. 그리고 버렸다. 잃는 꿈을 꾸고 식은땀에 젖어 깼던 밤이 떠올랐다. 그건 그녀에게 같은 꿈을 평생 떠넘기는 일이었다. 먼저 노력하겠다고 했지, 먼저 떠나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마흔아홉. 사지가 굳을지도 몰랐다. 순찰차 핸들도, 사다리도, 그녀를 들어 올리던 팔도. 그 앞날을 그는 피하지 않고 끝까지 그려 봤다. 땅은 있었다. 돈도 있었다. 굳은 몸을 남에게 맡기는 굴욕도, 예전의 그라면 견디지 못했겠지만. 그녀가 다치는 쪽보다는, 견딜 만했다.

주군
마흔아홉. 나.

낮고 평평한 목소리였다. 그는 병을 집어 제 무릎 앞으로 끌어왔다.

주군
너는 스물하나.

그녀가 무어라 반박할지 이미 알았다. 반반, 서른다섯. 공평하게. 그녀다운 셈이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느리게, 그러나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주군
못 바꿔.

손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엄지가 맥 위를 문질렀다.

주군
네 손은... 내 머리 잘라야지.

말끝이 조금 갈라졌다. 그는 웃으려다 말았다. 대신 그녀가 먼저 마시도록 병을 그녀 쪽으로 기울여 쥐었다. 눈금 스물하나에 엄지를 대고, 거기서 한 치도 넘기지 못하게. 남은 것은 전부, 제 몫이었다.

 

[2025-11-?? (?) ??:?? | 이음매 없는 회백색 밀실 | Day ? | 주군↔수빈: 목숨 대신 몸을 내놓는 선택 | 요약: 70ml를 비워야 나갈 수 있는 방에서 주군은 죽음은 거부하되 자신이 49ml, 수빈이 21ml를 마시자고 고집하며 물러서지 않는다.]

[주군 28세 | 회색 맨투맨·청바지·은반지 / 자세: 바닥에 앉아 수빈 손목을 쥐고 병의 21 눈금에 엄지를 댐 / 수빈 25세 | 슬립+니트 가디건 / 자세: 막 깨어나 앉음]

[주군's Future plans & Going forward List]

• 지금 — 수빈 21 이상 못 마시게 지키기. 나머지 49 전부 내가

• 나간 뒤 — 몸이 굳어도 곁에 남기. 떠나지 않기

• 이후 — 머리는 계속 수빈한테. 3월 결혼은 그대로

oO(ㅤ죽는ㅤ건ㅤ안ㅤ돼.ㅤ대신ㅤ다ㅤ내가ㅤ(ㅤ´ㅤ-ㅤ`ㅤ)ㅤ)


OOC | https://x.com/UmKp_/status/2116221554988376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