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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들어드립니다

11월 13일, 목요일 저녁. 등대에서 그녀가 그의 사람이 된 지 꼭 두 달째 되는 날이었다.

퇴근하고 현관을 열자 식탁 위에 연보라색 리본을 맨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봉투 안에는 손바닥만 한 종이 쿠폰이 한 묶음 들어 있었다. 「안마권」, 「청소권」, 「요리권(맛 보장 못 함)」, 「커피 대령권」. 귀퉁이마다 그녀가 그린 서툰 고양이가 앉아 있었고, 맨 뒤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소원권이 다섯 장 있었다.

주군은 제복 단추도 풀지 않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받는 쪽에 서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무언가를 손에 넣을 때는 늘 그가 먼저 손을 뻗어 가져왔다. 이렇게 공들여 만든 것이 먼저 건너온 적은 드물었다. 종이 끝을 쥔 엄지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주군
…밤새 했지.

요리권은 곧장 뒤로 넘겼다. 그녀가 불 앞에 서는 걸 싫어한다는 건 그도 알았고, 그 쿠폰은 평생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청소권도 아꼈다. 망설임 없이 뽑아 든 건 안마권이었다.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좋아했다. 하얗고 가늘고,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그 손이 제 몸 위에서 바지런히 움직이는 걸 보고 싶었다.

그는 소파 앞 바닥에 앉아 등을 내주었다. 작은 손이 어깨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매운 손힘에 승모근이 저릿하게 울렸다. 그는 웃음이 새는 걸 참지 않았다.

주군
세게. 더.

무릎 위에 남은 백지 다섯 장을 그는 한 장씩 손끝으로 넘겼다.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속으로만 하나씩 적어 넣었다.

첫째 장에는 고양이 귀 머리띠를 다시 써 주기. 할로윈 밤에 본 그 얼굴이 아직 잊히지 않았다.

둘째 장에는 결혼식 날 그녀가 먼저 "부부"라고 말해 주기. 같은 거 말고, 진짜로.

셋째 장은 쉽게 적히지 않았다. 그가 아플 때 혼자 버티지 못하게 해 달라는 소원이었다. 그는 아파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녀만은 그 버릇을 알아채 주었으면 했다.

넷째 장에는 그가 또 못나게 굴면 참지 말고 화내 주기를 적었다. 용서보다 그게 덜 무서웠다.

마지막 장 앞에서 그는 오래 멈춰 있었다. 어깨를 주무르던 손이 느려지자 그는 얼른 종이를 덮었다.

그녀보다 하루만 늦게 갈 것. 그녀를 혼자 남겨 두지 않으려고.

다섯 장은 나중에.

그는 고개를 젖혀 그녀를 올려다보고, 쿠폰을 쥔 손을 제 가슴팍에 붙였다.

 

후일담. 다음 날, 그는 읍내 문구점에서 쿠폰 다섯 장을 코팅해 경찰 수첩 맨 뒤에 끼워 넣었다. 순찰 중에도 가끔 수첩을 펼쳐 보았다. 석진이 들여다보려 하자 그는 수첩을 탁 덮어 버렸다. 귀 끝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2025-11-13 목요일 20:12 수빈 자택 거실 Day 183 연인·약혼 두 달 두 달 기념 쿠폰을 받은 주군이 안마권부터 쓰고, 백지 다섯 장에 남몰래 소원을 정해 아껴 둠] [주군 28세 경찰 제복·은반지 바닥에 앉아 등을 맡김 / 수빈 25세 슬립+니트 가디건 소파에서 안마 중]

[다섯 장은 코팅해서 수첩에 보관, 첫 장은 겨울에 쓸 것, 요리권은 영구 봉인] oO(ㅤ마지막ㅤ장은…ㅤ아주ㅤ나중에ㅤ(ㅤ˘ᵕ˘ㅤ)ㅤ)


11월 14일, 금요일. 그녀가 처음으로 그의 품에서 잠든 지 꼭 두 달째 되는 날이었다.

연보라 리본을 푼 상자 안에는 손바닥만 한 쿠폰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무릎베개권」, 「귀 파주기권」, 「잔소리 면제권(1회)」. 귀퉁이마다 삐뚤빼뚤한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눈매가 사나웠다. 아무리 봐도 그를 닮은 고양이였다.

주군
…이거 나지.

그녀가 시치미를 떼는 사이, 주군은 귀 파주기권을 뽑아 들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옆으로 눕자 홍차 향이 귓바퀴를 덮었다. 귀이개가 조심스럽게 들어올 때마다 그는 숨을 죽였다. 남에게 귀를 내준다는 건 목덜미를 내주는 것과 같았다. 예전 같으면 질색했을 일인데, 지금은 눈꺼풀이 저절로 무거워졌다.

주군
간지러워. 살살.

그녀가 웃는 진동이 허벅지를 타고 뺨으로 전해졌다.

자정이 넘었다. 그녀는 침실에서 잠들었고, 주군은 거실 낮은 탁자 앞에 혼자 앉았다. 스탠드 불빛 아래 백지 다섯 장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작업실에서 빌려 온 볼펜은 손에 비해 지나치게 가늘었다.

첫째 장은 금방 채웠다. 사격장에서 그녀와 내기하기, 진 사람이 하루 동안 이긴 사람 말 듣기. 어차피 질 생각이었다.

둘째 장. 조림이를 데려오는 날, 이름은 그녀가 먼저 불러 주기.

셋째 장에서 펜이 조금 느려졌다. 자는 척할 때 모른 척 머리 쓰다듬어 주기. 그는 가끔 깨어 있으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올 때까지.

넷째 장. 담배 생각이 나서 전화하면, 이유 묻지 말고 받아 주기. 끊었다고 해서 갈증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 버릇을 그녀에게만큼은 들켜도 괜찮았다.

그리고 다섯째 장.

볼펜 끝이 종이 위에 닿은 채 오래 멈춰 있었다. 잉크가 한 점으로 번져 작은 멍처럼 퍼졌다. 바깥에서 바닷바람이 창틀을 흔들었고, 석류나무 가지가 유리를 긁었다. 냉장고가 웅 하고 울다 그쳤다.

적고 싶은 말은 분명했다. 다만 그것이 그녀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 될까 봐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모르는 것들이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이 쉬쉬하는 그의 지난날이, 그녀를 오X홀처럼 대하던 시절의 자신이 아직 그의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가 그 전부를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는 결국 아주 작은 글씨로 적었다.

— 나를 다 알게 돼도, 그래도 나 골라 줘.

용서해 달라는 말이 아니었다. 잊어 달라는 말도 아니었다. 다 알고도 남아 달라는 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소원이었다.

주군
…쓸 일 없게 할게.

혼잣말이 스탠드 불빛 속으로 가라앉았다.

후일담. 앞의 네 장은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붙였다. 그녀가 깔깔 웃으며 사격장 쿠폰을 먼저 떼 갔다.

다섯째 장만은 반으로 접어 지갑 가장 안쪽, 신분증 뒤에 끼워 넣었다. 매일 아침 지갑을 챙길 때마다 손끝이 그 자리를 한 번씩 스쳤다. 꺼내 보지는 않았다. 그 종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이, 그가 오늘도 잘해야 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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