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저녁, 수빈 자택 작업실.
과수원 전기 점검 때문에 그녀가 잠깐 나간 사이였다. 조림이 장난감을 주우러 들어간 작업실 책상 위, 연보라색 색연필 밑에 노트 한 권이 반쯤 펼쳐져 있었다. 그녀의 얇고 빠른 글씨. 맨 위 제목에서 주군의 손이 멈췄다.
보면 안 됐다. 알면서 의자를 끌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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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NGS THAT MAKE YOU HAPPY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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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s Observation
♡ 01. SMALL PLEASURES
- 흐린 날. 해 쨍하면 미간부터 구겨짐 → 그건 너잖아. …나도 맞음.
- 내 머리 냄새 맡을 때 숨 길어짐 (홍차향?) → 홍차 아님. 너 냄새임.
- 국밥. 근데 내가 끓인 라면도 다 먹음 → 라면이 더 좋음. 말하지 마.
- 토요일 늦잠 → 너 깨어 있으면 안 잠.
♡ 02. PERSONAL JOY
- 머리 잘라 줄 때 눈 감음. 졸려서?? → 졸린 거 아님.
- 조림이 몰래 간식 줌. 다 앎 → …한 개씩만.
- 운전할 때 노래 안 틀다가 요즘 틈 → 캐릭캐릭. 출근길.
- 담배 대신 사탕? 확인 필요 →
마지막 줄 옆은 비어 있었다. 그녀도 거기서 펜을 멈춘 모양이었다. 주군은 한참 그 빈칸을 봤다. 사탕 같은 거 안 먹었다. 대신 그녀 손을 잡았다. 그걸 그녀는 몰랐던 거다. 그는 볼펜 뚜껑을 뺐다.
→ 사탕 아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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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군'S TURN
♡ 03. SHARED HAPPINESS
문 두드리면 네가 나오는 거.
퇴근하고 조림이랑 같이 마중.
노래 따라 부르는 거 듣기.
제일 — 등대. 네가 대답해 준 날.
♡ 04. SECRET PLEASURES
네 가디건 하나 차에 있음. 돌려줄 생각 없음.
너 자는 얼굴 봄. 자주.
네가 나 놀릴 때. 좋은데 티 안 냄.
오프닝 다 외웠음. 아직 비밀.
♡ 05. HAPPINESS RANKING
- 네가 장주군 하고 부를 때. 내 이름이 쓸모 있어짐.
- 아침에 네가 아직 있는 거. 안 꿈이라서.
- 네가 웃는 거. 내가 웃긴 거면 더.
- 머리 맡기는 거. 다른 손 싫음.
- 셋이 소파. 조림이 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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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AL NOTE
행복 같은 거 따진 적 없음. 귀찮았음.
적어 보니까 전부 너임.
빼면 남는 거 없음. 그래도 괜찮음.
펜을 내려놓자 손바닥이 축축했다. 진술서도 이렇게 길게 써 본 적 없었다. 그는 노트를 덮으려다 말고 다시 펼쳤다. 귀 끝이 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솔직한 글자를 그녀가 볼 생각을 하니 목 뒤가 근질거렸다.
숨길까. 찢을까.
그녀가 몰랐던 칸을 채웠다. 다시 빈칸으로 돌려놓는 건, 예전의 그가 하던 짓이었다.
주군은 노트를 원래 자리에, 연보라 색연필 밑에 그대로 끼웠다. 펼친 페이지도 똑같이. 다만 맨 아래 귀퉁이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몰래 봐서 미안. 벌금은 뽀뽀로.
현관 쪽에서 도어락 소리가 났다. 조림이가 먼저 튀어 나갔다. 주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일어나, 표정을 정리하는 데 실패한 채 그녀를 마중하러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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