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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목요일 오후의 작업실은 태블릿 충전기의 초록 불빛과 연보라 커튼에 걸러진 햇살로 묽게 물들어 있었다. 수빈은 클라이언트 미팅 통화를 하러 서재로 들어간 참이었다. 은재는 그녀가 부탁한 펜 뚜껑을 찾느라 책상 서랍을 열었다가, 크로키북 사이에 끼어 있던 연한 회색 메모지 한 장을 발견했다.

맨 위에 반듯한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그는 서랍을 닫는 것도 잊은 채 의자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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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NGS THAT MAKE YOU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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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SMALL PLEASURES

  • 비 오는 새벽 → (편의점 처마 밑에서 보는 비. 맞음.)
  • 복숭아 아이스티 → (이걸 어떻게 앎?? 들킨 적 없는데)
  • 홍차 향 맡을 때 표정 풀림 → (그건 네 향수라서 그런 거고)
  • 따뜻한 국물 → (금성식당 ㅇㅇ)

♡ 02. PERSONAL JOY

  • 혼자 하는 리듬게임 → (혼자 → 이제 네 옆에서)
  • 옥상 → (정답)
  • 밤에 이어폰 꽂고 걷기 → (요즘은 안 꽂음. 네 목소리 들어야 돼서.)
  • 칭찬 들을 때 귀 빨개짐 → (이건 지워. 아니 지우지 마. 근데 쓰지 마.)

마지막 줄 아래는 비어 있었다. 03번부터는 제목만 덩그러니 남아, 아직 아무도 대답하지 않은 질문처럼 그를 올려다보았다. 은재는 꽂혀 있던 연필을 집었다. 손끝에 흑연 냄새가 스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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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PC'S TURN

♡ 03. SHARED HAPPINESS

  • 아침에 "좋은 아침" 듣는 거
  • 15g 재고 네가 맛 보는 거 기다리는 시간
  • 욕조에서 네 연극 보는 거. 관객 나 하나.
  • 깍지.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 04. SECRET PLEASURES

  • 너 자는 동안 알람 몰래 끄는 거
  • 네 가디건 입어 보는 거 (작음)
  • 네가 "오빠"라고 할 때 일부러 못 들은 척해서 한 번 더 듣는 거

♡ 05. HAPPINESS RANKING

  1. 옥상에서 이름 불렸을 때 — 십 년 만이라서
  2. 캐리어 하나로 이 집 들어온 날 — 처음으로 돌아갈 데가 생겨서
  3. 깨어 보니 손 잡혀 있던 새벽 — 그 복도가 끝나서
  4. 처음 같이 내린 커피 — 시고 나서 달았음
  5. 지금 — 네가 나 궁금해했다는 걸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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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AL NOTE

행복이 뭔지 몰랐는데, 적다 보니 다 너 있는 데서 일어난 일이네. 존재감? 그런 거 재는 거 아님. 그냥 배경 전부.

 

연필을 내려놓은 손이 어딘가 낯설게 뜨거웠다. 은재는 메모를 다시 훑다가 04번 셋째 줄에서 멈칫했고, 지우개를 집었다가 끝내 내려놓았다. 목덜미까지 번진 열기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끄며 그는 낮게 웃었다. 비웃음도 체념도 아닌,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다 빠진 웃음이었다.

젠
아, 진짜. 이걸 왜 다 썼냐, 나.

그는 메모를 반으로 접어 원래 자리에 넣으려다, 마음을 바꿔 그녀의 키보드 위에 펼쳐 두었다. 숨기면 또 혼자 갖는 게 되니까. 대신 맨 아래 귀퉁이에 작게 한 줄을 덧붙였다.

6번은 네가 채워. 저녁 산책 때 말로.

서재 문 너머로 통화를 마무리하는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재는 서랍 속 펜 뚜껑을 그제야 찾아 쥐고,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거실 소파에 누웠다. 쿠션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귀 끝만은 끝내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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