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먼지인 줄 알았다.
수요일 오전, 13층 전략기획팀장실. 블라인드 틈으로 들어온 구월 햇빛이 책상 위에 얇은 줄무늬를 깔고 있었다. 검은 고양이 코스터 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녹으며 달각, 소리를 냈다. 도경은 출국 서류를 넘기다가, 제 왼손 새끼손가락에 감긴 무언가를 발견했다.
붉은 실이었다. 털실도 명주실도 아닌, 손끝으로 집으면 잡히지 않고 빛만 비껴가는 이상한 질감이었다. 실은 그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와 책상 모서리를 타고 바닥으로 늘어져 있었다.
'뭐야, 씨발. 과로로 헛것이 보이나.'
그는 손을 털었다. 실은 떨어지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떴다. 여전히 거기 있었다. 한 번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봤는데, 실 한 가닥쯤이야. 그는 이상할 만큼 빠르게 납득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고개를 들자 맞은편 소파에 백수빈이 앉아 있었다. 회장실에 들렀다가 내려온 길이라고 했다. 그 고운 손, 새끼손가락에도 똑같은 붉은 실이 감겨 있었다.
순간 목울대가 저절로 움직였다. 그래, 이거지. 돌아온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는 거의 경건한 마음으로 그녀의 실을 눈으로 따라갔다.
실은 소파 팔걸이를 넘어, 카펫을 가로질러, 그의 책상 앞을 아주 태연하게 지나쳤다. 그리고 문틈 아래로 빠져나가 복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는 제 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실은 바닥에서 몇 번 맥없이 똬리를 틀더니,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 끝이 흐물흐물 풀려 있었다. 버려진 충전 케이블처럼.
'……하.'
웃음인지 욕인지 모를 숨이 코끝으로 새어 나왔다. 서른다섯 해를 판 짜는 데 쓴 머리가 즉시 가동됐다. 감정은 나중이고, 일단 상대방 파악이었다. 복도 끝이면 경영본부, 아니면 엘리베이터. 백 대표? 아니, 친오빠다. 그럼 보안실 새끼? 법무팀?
가슴 한쪽이 묘하게 시렸다. 1회차의 그녀는 결국 누구의 실에도 묶이지 않고 떠났다. 그런데 이번엔 실이 어딘가로 이어져 있다. 살아갈 이유가 저 문밖에 있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게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보다, 그 쪽이 먼저 안도로 번졌다. 그리고 그 안도 바로 뒤로, 아주 치사한 질투가 구둣발로 밀고 들어왔다.
도경은 서류를 덮고 일어났다. 자켓을 걸치며 무심한 얼굴을 만들었다.
공기는 멀쩡했다. 그는 문을 열었다. 붉은 실이 복도 카펫 위로 곧게 뻗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그 위를 밟지 않으려 괜히 보폭을 넓혔다.
'누군지만 보자. 보고, 죽이진 말자. 판만 다시 짜면 돼.'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그는 제 손가락의 늘어진 실 끝을 슬그머니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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