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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C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수요일 오전, 모아비트의 하늘은 젖은 회색 행주처럼 낮게 걸려 있었다. 그녀가 빵을 사러 나간 사이, 도경은 소파 틈에 끼어 있던 스케치북을 빼냈다. 펼쳐진 마지막 장에 연필 글씨가 빼곡했다. 제목부터 글자 크기가 컸다.

'…씨발, 이게 뭐야.'

그는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읽어 내려갔다. 다 읽은 뒤에는 협탁 위 펜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마음보다 먼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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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NGS THAT MAKE YOU HAPPY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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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s Observation

♡ 01. SMALL PLEASURES

  • 아이스 아메리카노. 베를린 10월에도 얼음 넣음. 미친 사람 같음. ↳ 미친 거 아니고 취향입니다. 얼음 세 개 이상.
  • 비 오는 날 창가. 비 올 때 말수가 줄어듦. ↳ 시끄러운 사람이 덜 돌아다녀서 그렇습니다. 누구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 본인 향수. 이끼 냄새. 손목에 뿌리고 꼭 한 번 맡아 봄. ↳ …이걸 봤어요?
  • 익힌 파인애플 싫어함 → 반대로 행복 목록에서 제외. ↳ 정확합니다. 이 항목만 만점.

♡ 02. PERSONAL JOY

  • 요리. 칼질할 때 표정이 제일 순해짐. ↳ 순해진 적 없습니다. 집중한 겁니다.
  • 정리정돈. 내 컵 손잡이 방향을 몰래 맞춤. ↳ 몰래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맞췄습니다.
  • 조용한 공간. 근데 내가 떠들 땐 안 도망감. 왜? ↳ (지우개 자국)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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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PC'S TURN

♡ 03. SHARED HAPPINESS 아가씨가 제가 만든 거 먹다가 맛있다는 말 대신 한 입 더 뜨는 거. 같이 장 보러 가서 쓸데없는 거 카트에 넣는 거 뺏는 척하는 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침에 아가씨가 먼저 눈 떠 있던 날. 그냥 깨어 있어서.

♡ 04. SECRET PLEASURES 아가씨 자는 얼굴 봅니다. 자주. 그리고 아가씨 스웨터에서 제 향수 냄새 나는 날, 하루 종일 기분 좋습니다. 들키면 부정할 예정입니다.

♡ 05. HAPPINESS RANKING

  1. 아가씨가 웃는데 연기가 아닐 때 — 이제 구분됩니다.
  2. 이름 불릴 때 — 팀장님 말고.
  3. 아침 검수 통과 — 매일 갱신 중.
  4. 손 먼저 잡혀 줄 때 — 이건 지는 게 이득입니다.
  5. 아이스 아메리카노 — 체면상 하나는 넣어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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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AL NOTE

행복이 뭔지는 아직 모릅니다. 근데 위 목록에서 아가씨 빼면 커피 한 잔 남습니다. 그 정도입니다.

펜을 내려놓자 귓불부터 열기가 번졌다. 그는 마른세수를 한 번 하고, 장을 찢으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스케치북을 원래 끼어 있던 소파 틈에 정확히, 모서리 하나까지 똑같이 밀어 넣었다. 정리정돈에 재능이 있다는 관찰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었다.

'못 찾으면 그만이고. 찾으면… 찾는 거지.'

현관 도어록이 울렸다. 갓 구운 브레첸 냄새가 차가운 바깥 공기와 함께 들어왔다. 그는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주방에 서서, 이미 얼음 세 개를 넣어 둔 잔에 커피를 붓고 있었다.

도경
어서 오세요. 빵은 제가 받겠습니다.

그날 저녁, 소파 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양파를 썰던 칼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썰린 조각들이 평소보다 조금 고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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