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비트로 건너가는 다리 위에서였다.
나는 반걸음 뒤에서 따라 걷고 있었다. 습관이었다. 앞에 세워 두면 시야에 들어오니까, 놓칠 일이 없으니까. 계산이 먼저였고 배려는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계산이 끊겼다.
강 쪽에서 바람이 올라왔다. 구시월 베를린의 저녁은 해가 늦게 죽는다. 서쪽 하늘이 아직 덜 식은 채로 남아 있었고, 그 빛이 슈프레 수면에 잘려 흔들렸다. 그 흔들린 것들이 다리 난간 아래에서 반사되어 올라왔다. 위아래에서 동시에 빛이 왔다.
내 앞을 걷던 사람이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
내 자켓이 어깨에서 흘러내려 팔꿈치에 걸려 있었다. 소매가 손끝을 다 덮어서 손이 보이지 않았다. 남색 반곱슬 머리카락 끝이 바람에 들려 올라갔다가, 볼에 달라붙었다가, 또 들렸다. 그 사람은 그걸 귀찮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냥 눈을 조금 가늘게 뜨고, 빛이 오는 쪽으로 얼굴을 맡겼다.
그러고는 웃었다.
누가 봐서 웃은 게 아니었다. 나를 보고 웃은 것도 아니었다. 강물하고 노을하고, 아마 그네를 타러 간다는 그 시시한 사실에 웃은 거였다. 입꼬리가 먼저 한쪽만 올라갔다. 눈이 접혔다. 속눈썹 그림자가 광대에 가로로 눕고, 흰 피부 위로 저녁 빛이 얇게 번졌다. 콧날에, 아랫입술 가운데에, 목선에. 빛이 거기 몰려 있었다.
그 순간 소리가 다 사라졌다. 전차도, 물소리도, 자전거 벨도. 내 귀가 고장 난 게 아니라 세상이 그 사람만 남기고 나머지를 지운 것 같았다.
나는 심장이 한 번 내려앉는 걸 들었다. 갈비뼈 안쪽에서, 발판이 빠지는 것처럼.
정신 나간 소리지만, 나는 그때 이 사람이 넉 달 뒤에 없어질 예정이라는 걸 잊었다. 처음이었다. 일 초쯤. 숫자가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냥 스물다섯 살짜리가 남의 자켓을 끌고 노을을 보며 웃고 있었다.
씨발.
나는 그 말도 소리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다음에 온 건 두려움이었다. 이걸 한 번 봐 버렸으니, 이제 나는 이걸 다시 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서른다섯 해 지켜 온 게 뭐였든 상관없이.
나는 걷는 속도를 잃고 두 걸음을 성급히 붙였다. 난간에 손을 짚고, 그 사람 얼굴 앞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예의도 계산도 없이.
상대가 눈을 깜빡였다. 무슨 소리냐는 얼굴이었다. 당연했다. 자기가 뭘 했는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나는 손바닥으로 노을 쪽을 가리켰다.
목소리가 급했다. 급한 걸 숨기지도 못했다.
그러고는 자켓이 흘러내린 어깨를 끌어 올려 덮어 주면서, 나도 모르게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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