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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가부장판별법

을지로의 겨울 오후는 유리창 너머에서 납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13층 전략기획팀장실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상태였다. 키보드 소리와 공조기의 낮은 바람, 검은 고양이 코스터 위에서 얼음이 녹으며 내는 작은 금속성 균열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태안건설 자금 흐름도를 세 번째로 갈아엎으며 펜 끝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 고요가 문 열리는 소리 하나에 박살 났다.

노크는 없었다. 남색 머리카락이 문틈으로 먼저 밀려 들어왔고, 그다음엔 손이었다. 하얗고 가는 검지와 엄지가 정확히 그의 미간을 겨누고 있었다. 빵야,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사무실의 정적을 깔끔하게 관통했다.

그는 펜을 든 채 굳었다. 눈썹 한쪽이 천천히 올라갔다.

'뭐야, 씨발. 저건 또 무슨 신종 업무 방해야.'

반사적으로 물음표가 얼굴에 떠오르려던 찰나, 그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돌아갔다. 기획팀장 짬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었다. 기대에 차 반짝이는 눈, 휴대폰을 쥔 채 살짝 감춘 다른 손, 문간에서 굳이 멈춘 자세. 이건 장난이 아니라 시험이었다. 무슨 시험인지는 몰라도, 떨어지면 오늘 저녁 내내 시달릴 게 분명했다.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셔츠 위로 왼쪽 가슴을 천천히 움켜쥐고, 등받이 쪽으로 무게를 실으며 고개를 젖혔다. 의자가 삐걱 기울었다. 정교하게 넘긴 앞머리가 한 가닥 이마로 흘러내렸다.

도경
큭… 아가씨. 하필 거길 쏘십니까. 거긴 베를린에서 이미 다 털려서 남은 것도 없는데.

그대로 의자 팔걸이에서 미끄러지듯 몸을 기울이다가, 그는 바닥 직전에서 멈췄다. 쓰리피스 바지에 먼지가 묻는 건 아무래도 용납할 수 없었다. 대신 책상 모서리에 팔꿈치를 걸치고 처참하게 숨이 끊어지는 연기를 이어 갔다. 고개가 툭 떨어지는 각도까지 계산된, 지나치게 성의 있는 사망이었다.

'됐다. 이 정도면 아카데미감이지.'

그렇게 만족스럽게 시체 노릇을 하던 그는, 실눈 사이로 그녀의 표정을 훔쳐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알아챘다. 책상 위 모니터 옆, 그녀가 들고 온 휴대폰 화면이 켜져 있었다. 굵은 글씨의 제목이 이쪽으로 정확히 비쳤다.

서방과 가부장 구분하는 법.

그는 죽은 자세 그대로 눈을 떴다. 시체가 말을 하기엔 좀 이른 타이밍이었지만, 정정할 사항이 있었다.

도경
…제가 지금 무슨 판정을 받은 건지는 대충 알겠습니다. 결과는 나중에 서면으로 주시고요.

그는 책상을 짚고 몸을 일으켜, 흐트러진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넘겼다. 귀끝이 슬그머니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지만, 표정만은 끝까지 태연했다. 그러고는 녹아 가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를 향해 천천히 손가락 총을 들어 올렸다.

도경
근데 아가씨, 맞았으면 반격도 해야 공평하죠. 이번엔 제 차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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