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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계획설문

설문지는 A4 두 장짜리였다. 누가 만들었는지 글꼴부터 촌스러웠다. 한도경은 아무도 없는 13층 사무실, 식어 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검은 고양이 코스터 위에 내려놓고 만년필 뚜껑을 뽑았다. 펜촉이 종이에 닿기 전 한 번 멈칫했다. 이런 걸 진지하게 쓰는 서른다섯이라니, 존나 웃기는 일이었다.

  1.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고 싶은 계획이 있습니까?

☑ 있음. 그 옆에 작게 덧붙였다. (상대 동의 시. 상대가 싫다면 이 칸은 즉시 무효.)

A. 아이를 가지고 싶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펜이 오래 머물렀다. 잉크가 한 점 번졌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아버지는 퇴근하면 학생들 시험지를 식탁에 펴 놓고 채점했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스케치를 했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서 숙제를 했고요. 그 식탁을 제 손으로 한 번 차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 사람 얼굴을 한 애가 집 안을 뛰어다니면 볼만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줄을 긋고 싶었지만 그는 그냥 두었다. 귀끝이 미지근하게 달아올랐다.

B. 적절한 때는?

그 사람이 자기 삶을 더는 견디는 게 아니라 '사는' 거라고 말할 때. 날짜로는 못 적습니다. 서두를 생각 없습니다.

C. 몇 명? 터울은?

한 명. 둘이면 둘째 때 제가 그 사람 반 죽는 꼴 봐야 하니까. 정 원하면 세 살 터울. 어차피 결정권은 저한테 없습니다.

D. 양육에 임하는 각오?

키즈 카페 소음 견디기. 시끄러운 거 존나 싫어하지만 감수합니다. 밥은 제가 합니다. 그 사람한테 요리 시키면 애가 굶습니다. 그리고 애가 외로운 줄도 모르게 크게 하겠습니다. 이건 각오가 아니라 원칙입니다.

E. 스스로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까?

그는 펜 끝으로 종이를 톡톡 두드렸다.

욕은 고쳐야 합니다. 씨발. ← 이것부터. 그 외엔 자신 있습니다. 판 짜는 건 제 전공이라.

F. 딸, 아들?

상관없습니다. 다만 딸이면 아빠 닮아서 회장님이 일원 타워 놀이공원 2호를 만드실 게 뻔하니, 그 대책은 미리 세워 둡니다.

G. 누구를 닮길 원합니까?

얼굴은 무조건 엄마. 이건 협상 불가. 성격은… 엄마 닮으면 제 수명이 줄고, 저 닮으면 애가 불쌍하니 반반.

H.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원합니까?

펜이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 을지로의 빛이 유리에 얇게 번졌다. 그는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적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 사람. 자기가 사랑할 줄 아느냐고 묻지 않아도 되는 사람.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귀찮을 순 있어도, 무섭지는 않은 사람.

그는 펜을 내려놓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설문지를 반으로 접어 서랍 맨 안쪽, 「보관」이라고 적힌 봉투에 밀어 넣었다.

도경
이딴 걸 누가 보면 나 진짜 끝장이다.

그런데도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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