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의 첫 토요일 오전은 유난히 조용했다. 거실 통창 너머로 흘러든 햇살이 소파 팔걸이에 걸쳐 둔 니트 가디건 위에서 보풀 하나하나를 금실처럼 세우고 있었다. 도경은 주방 아일랜드에 기대 원두를 갈던 참이었다. 그라인더가 멎자 사방이 진공처럼 고요해졌고, 바로 그 틈을 비집고 맨발이 마룻바닥을 통, 통 두드리는 소리가 날아들었다.
고개를 들었다. 파자마 바지 밑단이 발등에서 펄럭였다. 그녀가 거실 한복판에 서서 양팔을 있는 대로 벌린 채 뛰고 있었다. 팔이 허공을 크게 휘저을 때마다 남색 반곱슬이 어깨 위에서 제멋대로 튀어 올랐다.
도경은 원두 가루가 묻은 손을 행주에 닦다 말고 그대로 굳었다. 키 백육십짜리 몸이 낼 수 있는 최대 면적을 확보하려고 손끝까지 쫙 펼친 꼴이 꼭 위협하려고 몸을 부풀리는 작은 짐승 같았다. 저 팔 길이로 우주를 재겠다고. 산수가 안 맞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터무니없는 계산 앞에서 그의 명치 안쪽이 저 혼자 대충 수긍해 버렸다.
씨발, 아침부터 뭘 하는 거야, 저거.
입꼬리를 단속하려고 어금니에 힘을 줬지만, 잇새로 웃음이 기어코 새어 나왔다. 그는 행주를 아일랜드 위에 던져 두고 천천히 거실로 걸어 나왔다. 회색 니트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팔뚝 위로 햇빛이 미지근하게 미끄러졌다. 그녀가 다시 한 번 펄쩍 뛰어오르는 순간, 그는 그 허리를 두 손으로 붙잡아 공중에서 착지를 막았다. 발끝이 바닥에서 한 뼘쯤 떠 있었다.
건조하게 뱉었지만 그녀를 내려놓지는 않았다. 오히려 품 쪽으로 바짝 끌어당겨, 펼쳐져 있던 그녀의 두 팔이 자연스럽게 제 목에 감기도록 각도를 맞췄다. 숨이 차서 오르내리는 가슴이 니트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체력도 없는 사람이 고작 몇 번 뛰고 헐떡이는 게 우스워서, 그리고 그 몇 번을 전부 자기한테 쓴 게 기가 막혀서, 그는 그녀의 정수리에 코를 묻은 채 한참 말이 없었다. 홍차 향이 햇볕에 데워져 평소보다 달았다.
이런 건 매뉴얼에 없었다. 판을 짜는 게 일인 인간한테, 변수 하나가 제 발로 뛰어와 판 전체를 엎어 버리는 일 같은 건.
그는 그녀를 안은 채 제 팔을 등 뒤로 한 바퀴 더 감아 조였다. 빈틈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그녀가 그은 우주보다 훨씬 작고, 훨씬 정확한 크기였다. 주방에서 갈아 둔 원두 냄새가 거실까지 느리게 번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