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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는 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한 순간

그날 사무실은 완벽하게 조용했다.

토요일 오전, 일원타워 13층. 주말이라 복도의 형광등은 절반만 켜져 있었고, 블라인드 틈으로 새어 든 구월의 빛이 책상 위에 가느다란 줄을 그었다. 공조기가 낮게 숨 쉬는 소리, 얼음이 녹으며 컵 벽에 부딪히는 소리. 도경은 결재 서류를 넘기다 말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쓴맛이 혀 위에서 정확하게 퍼졌다. 그가 늘 원하던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는 같은 문단을 세 번째 읽고 있었다.

펜 끝이 종이 위에서 멈춰 있었다. 그는 그걸 깨닫고 펜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었다가, 결국 책상 모서리에 반듯하게 눕혔다. 시선이 저도 모르게 책상 위 전화기로 미끄러졌다. 보안실 내선. 울릴 이유가 없는 날이었다. 정문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오 분 미만의 소란 같은 건, 오늘은 없을 것이었다.

나는 당신한테 아무것도 아니지.

어제 백반집 앞에서 그 사람이 남긴 문장이 공조기 소리 틈에 끼어 있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연락이 끊겼다. 그는 그걸 해방이라고 불러야 맞았다. 귀찮은 게 알아서 떨어져 나갔으니까. 이 조용함을 얻으려고 그동안 몇 번이나 자켓을 들고 도망쳤던가.

그는 서랍을 열지 않으려고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잠가 둔 서랍 안에는 책자가 있었다. 그가 뱉은 욕까지 정성껏 옮겨 적은, 어처구니없는 어록집. 열쇠는 지갑 안쪽에 있었고, 그는 그 위치를 너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씨발. 조용하잖아. 내가 원하던 거잖아.

그는 의자를 뒤로 밀며 등을 기댔다. 셔츠 등판이 가죽에 스치며 낮게 사각거렸다. 천장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 아무것도 없음이 처음으로 소리처럼 귀를 눌렀다. 누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오늘은 뭐 해, 하고 묻지 않는 사무실은 조용한 게 아니라 비어 있었다. 그 둘이 다르다는 걸 그는 서른다섯 해 동안 몰랐다.

휴대폰을 집었다. 대화창 맨 위에 그 이름이 아직 있었다. 마지막 말풍선은 그녀의 것이었고, 그 아래 답장 칸은 하얗게 깜빡였다. 그는 엄지를 화면 위에 띄운 채 오래 멈춰 있었다. 무언가 쓰면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쓰지 않으면, 이미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었다.

얼음이 컵 바닥으로 무너졌다. 딸깍, 하는 작은 소리에 그는 어깨를 움찔했다. 그 소리를 그는 엘리베이터 도착음으로 들었던 것이다.

도경
아.

그는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숨이 새는 소리에 가까웠다.

도경
미친 새끼. 얼음 소리에 쫄았냐.

혼잣말이 텅 빈 사무실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게 이렇게까지 이상할 일인가. 그는 이마를 손바닥에 묻었다. 손바닥 안쪽이 미지근했다.

그때 알았다. 이 조용함은 이제 영영 예전의 맛이 나지 않으리라는 걸. 아무리 문을 잠그고, 서랍을 잠그고, 연락을 끊어도, 그는 이제 소음의 빈자리를 듣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걸.

되돌아갈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없던 고요로는.

도경은 휴대폰을 엎어 두고 자켓을 집어 들었다. 이번엔 도망치려는 게 아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문 앞에 잠깐 서 있었을 뿐, 발끝은 이미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있었다.

 

날짜/시간25/09/20 (토) 10:15
장소서울 중구 일원타워 13층 전략기획팀 팀장실 → 문 앞(엘리베이터 방향)
수빈의 복장부재
도경의 복장흰 셔츠, 차콜 쓰리피스 조끼와 슬랙스, 손목시계, 자켓을 손에 듦
관계팀장 ↔ 회장 막내따님 (연락 두절 상태)
상황/자세빈 사무실 책상 앞에서 이마를 손바닥에 묻고 앉아 있다가, 휴대폰을 엎어 둔 채 자켓을 들고 일어나 문 앞에 섬. 몸은 엘리베이터 쪽을 향해 있음.
📝단기: 일단 나간다, 어디로든. 서랍 열쇠는 지갑에 둔다. 장기: 아직 인정 못 함. 근데 이 조용함은 못 견딤.
💭얼음 소리를 엘리베이터 소리로 들었다. 좆됐다. 이제 조용한 게 조용하지가 않다 (;´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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