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의 편의점은 냉장고 모터 소리만 남은 수조 같았다. 형광등 하나가 계산대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고, 은재는 그 떨림을 올려다보지 않는 법을 오래전에 익혀 두었다. 유리문 밖 횡단보도 신호가 아무도 없는 길을 향해 혼자 초록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붉어졌다.
홍대에서 그녀를 처음 마주하고 돌아온 지 이틀째 밤이었다.
그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냈다. 손님이 끊기는 이 시간대면 늘 하던 일이었다. VICE를 열고, 쌓인 매칭 요청을 엄지로 넘기고, 얼굴과 어깨선과 복근 사진을 훑고, 가장 가까운 동네의 남자에게 짧게 말을 거는 것. 퇴근 후 몇 시간을 메울 상대를 고르는 데에는 길어야 한 곡 분량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건 고민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얼마나 잘생겼는지, 얼마나 빨리 끝나는지, 얼마나 아무것도 묻지 않는지.
화면이 열리자 알림 숫자가 붉게 떠 있었다. 모르는 닉네임들. 그중 하나는 사진만으로도 예전 같았으면 망설임 없이 답장을 눌렀을 얼굴이었다. 넓은 어깨, 정돈된 턱선, 프로필에 적힌 지역은 걸어서 십 분 거리.
은재의 엄지가 그 위에서 멈췄다.
누르지 않은 것도, 누르려는 것도 아닌 채로 손가락이 화면 위에 떠 있었다. 이상했다. 몸 어디에서도 거부감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흥미가 없었다. 그 얼굴 너머에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이 남자가 생선 가시를 잘 바르는지, 걸음이 빠른 편인지, 웃을 때 입꼬리부터 움직이는지. 그런 것들이 처음으로, 상대를 고르는 기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대신 대화 목록을 아래로 내렸다. 멍지. 마지막 메시지는 그녀가 보낸 짧은 한 줄이었다. 잘 들어갔어? 이미 답장한 문장인데도 그는 그 글자들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금성식당의 김 서린 창, 젓가락 끝으로 가시를 하나씩 집어내던 제 손,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그녀의 검은 눈.
그 순간 계산대 아래 진열된 페트병 하나가 시야에 걸렸다. 밀크티. 그녀 쪽에서 희미하게 나던 향과 비슷한 이름이 적힌 라벨이었다. 은재는 자신이 그것을 집어 들고 바코드를 찍고, 제 돈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걸 삑 소리가 울린 뒤에야 알아차렸다. 마시지도 않을 거였다. 그저 손 닿는 곳에 두고 싶었다.
그는 차가운 병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 VICE의 알림 숫자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매칭 요청 창을 닫았다. 지우지도, 차단하지도 않았다. 그냥 더는 열어 볼 이유가 사라진 문을 닫듯이.
낮게 새어 나온 말은 웃음에 가까웠다. 형광등이 다시 한 번 떨렸고, 이번엔 그도 고개를 들어 그것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우스웠다. 십 년 동안 공들여 쌓은 계산법이, 생선 한 접시와 짧은 한 줄 메시지 앞에서 이렇게 조용히 무너져 내린다는 게.
예전으로는 못 돌아간다. 그 문장이 불안이 아니라 이상하게 안도처럼 가슴 밑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는 밀크티 병을 계산대 구석, 자기만 보이는 자리에 세워 두고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이번엔 망설이지 않았다.
[27세|편의점 조끼 차림, 계산대에 기대 휴대폰과 밀크티 병을 쥔 자세 / 25세|화면 너머, 부재]
[ZEN's Future plans & Going forward List]
- 목요일, 그녀 먹고 싶은 거로
- 생선 나오면 또 가시 발라 주기
- 저 밀크티, 언젠가 직접 건네기
- 앱 알림 끄기
oO(얼굴 말고 딴 게 궁금한 건 처음이네)(〃▽〃)